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시는 P 권사님은 모든 게 감사할 뿐이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자녀들도 잘 키웠고 결혼 5년 만에 작은며느리는 애타게 기다리던 첫아이를 출산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태어난 손자가 뇌병변 장애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권사님은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지요. ‘하필이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친 거냐고요?’ 혹 그럴만한 죄가 있는지도 물었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기도원까지 다니며 발버둥 쳐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아직 인생의 쓴맛을 맛보지 않은 것이라 했는데, P 권사님이야말로 하나님이 정말 잔인하다고 느껴졌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면 때때로 기적을 베푸시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원대로 하나님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겁니다. 예컨대 암이 많이 진행돼서 수술해도 완치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했는데, 어느 날 종양이 없어져서 의사조차 깜짝 놀랄 때가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직접 힘써서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테면 배우자나 자녀들과의 갈등으로 너무 힘들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자원들을 이용하여 우리 스스로 해결해나가길 원하십니다. 이를테면 더딜지라도 서로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거나 아니면 교회 목사님이나 교인들, 혹은 상담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도록 하시지요.
고난을 버텨낼 수 있는 것도 기도 응답이다
하지만 죽도록 기도해도 하나님이 직접 해결해주시지도 않고 또 우리 스스로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P 권사님의 사례처럼이요. P 권사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불쑥불쑥 찾아오는 고난들 앞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정말 나를 버리신 걸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P 권사님은 첫 손주가 태어났을 때는 정신을 놓은 사람 같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버티고 또 버티면서 살아내고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인내하며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실은 하나님이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버텨내는 것도 기도응답이고 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시 말해 조건과 상황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P 권사님은 그 고난으로부터 의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의미를 찾으면 고난에 대한 태도가 바뀔 수 있고 태도가 바뀌면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버텨낼 힘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발생하는 고난들을 피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요. 하지만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순전히 나의 태도에 달려있습니다. 위의 사례에서도 뇌병변 장애가 있는 손자가 태어났잖아요. 이 경우 엄마 아빠 두 사람이 더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아이를 사랑으로 양육시킬 수 있지만, 서로의 유전자를 탓하고 갈등하면 부부가 갈라서는 일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P 권사님은 아들 며느리가 자신들의 직업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전적으로 손자를 봐주고 있습니다.
사실 인생에서 주어지는 고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운전 중에 옆 차선에서 달리던 차가 내 차 앞으로 끼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 끼어든 차의 운전자를 향해 어떻게 반응을 보일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심리상태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고난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이토록 중요해서인지 태도(attitude)라는 단어를 이렇게 해석한 사람도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의 인생을 100점짜리로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태도 즉 attitude는 완벽하게 100점이 나오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알파벳에 순서대로 숫자를 붙여보세요. a는 1, b는 2, c는 3 이런 식으로요. 그럼 z는 26이 되겠죠. 그런 다음 태도 즉 attitude에 이들 숫자를 붙여서 더하면 딱 100점이 나온답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고난을 피할 수도 없고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도 없지만, 그 고난을 새롭게 해석하면 그 가운데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삶의 의미를 찾으면 고난을 버텨낼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교회에서 연세 많으신 성도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죠. 자신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바로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면서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여기까지 살아올 수 없었을 거라고요. 혹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연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하시죠.
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인생이 바뀔 수 있고 그런 연유로 내게 주어진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해서 꼭 절망으로 끝나버리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시련이나 고난이 닥쳐도 해석을 잘하여 의미를 부여하면 얼마든지 삶이 바뀔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해석한 만큼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큰 고난만 해석이 필요한 건 아니죠. 이런 사례가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들 한 명을 둔 S 집사님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일정한 직업이 없어서 동네 사람들은 ‘건달’이라고 부르지요. ‘건달’이라는 말에 걸맞게 이따금 흰색 양복으로 한껏 멋을 내고는 외출합니다. 살림집이 딸린 미용실에서 바쁘게 일하는 집사님은 그런 남편을 볼 때면 속이 뭉그러진다고 해요.
하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늘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돈방석에 앉게 해준다’라고 한껏 허풍을 떨고 집을 나선답니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S 집사님은 손님들의 머리를 깎을 때도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그들의 뒤통수가 온통 얼마짜리 돈으로만 보였다고 하죠.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집사님의 태도가 바뀌었는데, S 집사님은 자신의 형편에 일단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이 말은 남편은 직장이 없지만, 자신이라도 일거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손님들의 뒤통수가 돈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자신을 믿고 머리 손질을 맡기는 그들이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S 집사님은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그러자 상황이 바뀐 건 하나도 없지만,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자신의 태도가 변하니까 남편도 조금씩 바뀌더라며 이제야 예수를 믿는 맛이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해석한 만큼의 삶을 살아간다’라고 하나 봅니다.
이제부터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이 닥쳤을 때 시험에 들거나 아니면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라는 가사처럼 원망을 쏟아내며 삶을 허비하지 말고 해석을 잘해서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는 전환점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고난을 ‘아무도 원하지 않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는데, 이 말도 결국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잘 해석하여 의미를 찾을 때, 비로소 원치 않았던 고난이 우리에게 원하는 선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글=강현숙 작가, 치매돌봄 전문가, ‘오십의 마음 사전’(유노책주)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생명의말씀사) 저자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