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사유화’ vs ‘만장일치 운영’.
국내 유일 민립대학 조선대가 이사장 퇴진을 둘러싼 자중지란을 겪고 있다.
지난해 7월 2026년 6월까지 두 번째 임기에 들어간 김이수 이사장이 호남 최대 사학을 사유화한다는 첨예한 논란이 가열되는 분위기다.
김 이사장 행보에 얽힌 논쟁은 9월 2학기 개강 직후 학내 갈등을 넘어 광주 5월 단체까지 가세하는 등 시민사회로 폭넓게 확산하는 형국이다.
이사장 퇴진에 맨 먼저 시동을 건 단체는 ‘범조선인비상대책위원회’다.
교육부가 5년간 1000억 원의 막대한 예산지원을 전제로 선정 중인 ‘글로컬대학30’ 2년 연속 탈락과 정관개정을 통한 인사권 전횡, 독단적 대학운영을 명분으로 지난 6월 이사장 퇴진운동에 불을 붙였다.
7월과 8월 공익형이사제 실현 등을 내걸고 이사장 퇴진 촉구대회를 수차례 개최한 비대위는 지난 5일부터 본관 중앙현관 앞에서 서명운동과 함께 천막농성에 돌입하는 등 투쟁 강도를 높였다.
이 대학교수들이 이사장 퇴진촉구 집단농성에 들어간 것은 1980년대 후반 학교법인을 독재적으로 운영하던 박철웅(1912~1999·옛 덕산그룹 회장) 전 이사장 일가 축출 차원의 학내분규 이후 30여 년 만이다.
대부분 교수가 소속된 교수평의회가 주축인 비대위에는 교원노조, 총동창회, 조선대 민주동우회를 포함한 학내 주요 단체 11개가 모두 참여하고 있다.
비대위는 “4년 넘게 이사회를 끌어온 이사장의 대학 사유화 책동을 막기 위해 공익형이사제 확대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며 “얼마 전 공모제를 통한 김춘성 총장의 부처장 인사안을 보란 듯이 반려한 것은 관련 법령을 어긴 학사개입의 심각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과도한 학사개입과 독단적 대학운영은 2025년 글로컬대학30 등 대학 중요업무를 추진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놓고 있다”며 김 이사장의 즉각적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이 단체는 올 들어 사유화에 팔을 걷어붙인 김 이사장이 연간 최소 640억 원의 이권이 걸린 의약품도매합작법인 파트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거액의 배임 행위를 저지른 의혹이 짙다고 폭로했다.
대학 재정기여 금액을 연간 200억~400억 원으로 제시한 특정 후보 업체를 고의로 떨어뜨리고 10분의 1수준밖에 되지 않는 ‘결탁 업체’와 제멋대로 계약하도록 한 탓에 막대한 재정손실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수액 등 원내처방뿐 아니라 약국을 포함한 원외처방, 거기에 의료기기, 소모품 구매비용 등을 포함하면 의약품 관련 이권은 어림잡아 2000억 원에 이른다”며 “실질적으로 이를 독차지할 합작법인 설립은 중대한 사안이지만 이사장이 정보를 독점하고 사실상 혼자 우선협상대상 업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비상근직인 이사장이 법적 근거도 없는 교직원 인사권까지 한 손에 틀어쥐고 학내 조직 장악에 나섰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사회가 ‘교직원 인사·보수·복무 등 처우에 관해 이사장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지난해 정관을 뜯어고친 후 관련법과 오랜 관행을 송두리째 무시한 교직원 인사발령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대위는 정관 개정으로 이사장 권한을 불법적으로 강화한 것도 모자라 ‘전가의 보도’처럼 불합리한 권한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고 밝혔다.
대학교육의 자주성을 해치는 독소조항을 신설해 한때 ‘총장 징계’까지 수시로 거론하면서 대학의 수장인 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개교 이후 최대 사업인 1조2000억 원대의 새 병원 건립사업도 구성원 동의나 도시관리계획 변경 신청 절차도 밟지 않은 채 ‘베일’ 속에서 졸속 추진해 자칫하면 224억 원이 넘는 설계비용만 날릴 뻔했다는 뒷얘기도 곁들였다.
이사회와 대학 집행부 간 갈등이 깊어지자 교육부는 최근 “사립학교법 등에 교수와 교직원에 대한 인사권은 총장이 갖도록 하고 있다. 이사장이 최종 승인을 하면 학사개입 우려가 크다”고 에둘러 총장 등 집행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파악됐다.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는 학교법인 자산매각과 단과대 통합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결정권만 행사할 수 있을 뿐 인사·보수·복무 규정 등은 노사협상 사안이자 대학운영을 책임지는 총장 고유 권한이라는 해석이다.
그뿐 아니다. 비대위는 교육부 행정조치 등에 대한 무분별한 소송 남발로 학교재정을 거덜 내고 매월 800만 원의 수당을 편법 수령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대학 사유화를 강행하고 있다며 ‘1인 지배 체제 강화’에 혈안이 된 김 이사장에 대한 교육부 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김 이사장의 1980년대 전력을 주목해온 5·18단체도 지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조선대 학내문제에 관해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는 지난 6일 발표한 성명에서 “5·18 광주학살 부역 전력을 가진 김 이사장 퇴진운동은 광주정신의 실천”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부상자회는 “5‧18 당시 김 이사장은 육군 31사단 소속 계엄사령부 군 검찰관으로 무고한 시민들에게 내란죄를 뒤집어씌워 ‘사형’ 등 유죄 구형을 서슴지 않았다”고 공세를 가한 뒤 광주시민을 폭도로 내몬 비뚤어진 법조인 경력이 이사장 선임 배경의 전부라고 강조했다.
부상자회는 나아가 신군부 군홧발 위세에 눌려 시민들을 외면한 김 이사장 선임 자체가 원천무효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단순 법리에만 의존해 학교발전을 가로막아온 임원 승인은 철회하거나 취소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보직교수들도 가세하고 있다. 전제열 부총장 등 집행부 핵심을 이루는 10명은 지난달 30일 “이사장이 원천적으로 대학행정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 뒤 일괄 보직을 사퇴했다.
이사장을 제외한 이사진 7명 중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이사는 ‘침묵 모드’를 유지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지만 사분오열 양상도 감지된다.
대학운영의 안정적 기조를 위해 이사장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의견과 대학 집행부의 ‘상왕(上王)’으로 군림하는 그릇된 행태를 더 두고 볼 수 없다는 시각으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조선대 A 이사는 “고교후배 등으로 ‘친정 체제’를 확고히 구축한 김 이사장의 직·간접적 대학 사유화 시도가 도를 넘었다”며 “오죽했으면 천문학적 이권이 걸린 의약품도매합작법인 파트너를 선정한 뒤 거듭된 정보공개 요청에도 명단을 깔고 앉아 지금껏 ‘23번 업체’라고만 우기고 있겠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실제 김 이사장 측근이자 고교후배인 법무법인 소속 최 모 변호사와 세무법인 소속 박 모 세무사 등 2명은 법인 산하 자산관리위원회와 의약품도매합작법인 선정위원으로 법인 살림에 입김을 불어넣는 등 대학행정에 참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선 조선대 법인과 김 이사장 측은 “총장이 제시한 인사안 반려가 불합리하다면 향후 제청을 통해 다시 논의할 수 있다”며 “공익형이사제 역시 서둘러 도입해 점차 인원을 늘려 최대한 투명한 대학운영을 하겠다”고 한걸음 물러선 모양새다.
하지만 현 이사장 퇴진에 대해서는 ‘글로컬대학 평가 기준’에 법인 운영지표는 찾아볼 수 없고, 대학운영도 과거 어느 때보다 민주적으로 해왔다며 한사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경한 자세다.
법인 측은 2021년부터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한 대학 발전 4개 테스크포스(TF)를 가동해 재정 건전성과 대학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삼은 대학자치 운영협의회를 수시로 운영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의약품도매 합작법인 설립도 전국 최초로 공개경쟁 방식을 채택한 만큼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퇴진 요구에 직면한 김 이사장은 전북 고창 출신 법조인이다. 1980년 5·18 당시에는 시민군 대변인 고 윤상원 열사 등의 시신을 군 검시관 신분으로 검시했다.
헌법재판관 시절인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파면’을 주문한 뒤 이정미 소장(헌법재판관) 퇴임 이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됐다가 ‘5·18 전력’ 등이 문제가 돼 국회 임명 동의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김 이사장은 “첫 임기가 확고해진 정이사 체제 속에서 지역의 신뢰를 회복하고 대학안정과 화합에 중점을 둔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두번째 임기에는 혁신과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보고자 한다”고 퇴진요구에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최대 현안인 병원 신축과 의약품도매합작법인 설립을 위해 이사, 총장 등과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나갈 것”이라며 나름의 청사진을 구상 중이다.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명품대학’을 구호로 내건 김 이사장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민립대학 설립 정신을 법인 정관 1조에 반영하고 전국적 공영형 사립대 확산을 가장 먼저 지지했던 게 그동안 이사장으로서 남다른 감회를 느끼는 점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조선대 법인은 오는 26일 이사회에서 이사장 퇴진 요구와 공익형 이사제 도입 시기 등 첨예한 학내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이 대학에서 20여년 근무한 한 교직원은 “조선대는 1946년 7만2000여 명의 전남도민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세운 국내 하나뿐인 민족사학”이라며 “학교법인이 하루빨리 갈등과 반목을 봉합하고 구성원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대학발전에 앞장서게 되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