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준호 “3700만원 받긴 했지만”…눈물의 회견에도 ‘의문’

입력 2024-09-12 09:11 수정 2024-09-12 10:23
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수원FC)가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시체육회관에서 열린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 관련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축구협회로부터 승부조작 혐의로 영구제명 징계를 받은 손준호(32·수원FC)가 “100% 진실만을 얘기했다”며 눈물로 결백을 주장하면서도 금품 거래에 관한 명확한 증거나 해명을 내놓지 못해 의문을 남겼다.

손준호는 11일 경기도 수원종합운동장 내 체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부조작 혐의와 이에 따른 중국축구협회의 영구제명 징계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산둥 타이산 동료 진징다오로부터 20만 위안(약 37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서도 이 돈을 받은 이유에 대해선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승부조작 등 불법적인 금전 거래는 절대 아니다”고 주장했다.

손준호는 “진징다오와 승부조작에 관해 단 한 번도 대화한 적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아내가 공안으로부터 휴대전화를 받았는데 1~2월 내용은 포렌식을 해도 대화 내용이 전혀 없었다. 두 달만 아예 싹 사라지고, 나머지는 다 있다더라”고 덧붙였다. ‘공안이 해당 기간 자료를 고의로 지운 거라고 보느냐’는 질문엔 “제 입으로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손준호의 에이전트는 손준호가 중국 법원으로부터 20만 위안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판사와 형량을 협상해 이미 구금돼 있던 10개월만큼의 형량을 받는 걸로 정리됐다고 설명했다. 에이전트는 손준호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이체 내용에 중국 법원이 금품수수 혐의를 갖다 붙였다는 취지로 승부조작에 대한 무혐의를 주장했다.

1시간30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손준호의 혐의를 뒷받침하거나 그의 결백에 힘을 싣는 공식 문서·자료 등 뚜렷한 증거가 단 하나도 제시되지 않아 여전히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는 모양새다.

유죄 판결문, 실마리 될 듯…“열람 요청해보겠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수원FC)가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시체육회관에서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법원의 판결문이 손준호를 둘러싼 궁금증을 해결하는 1차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손준호의 에이전트는 “한국 귀국 자체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판결문을 통해 손준호에게 적용된 자세한 혐의 사실을 확인해볼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우리도 판결문은 받지 못했다”면서 “판결문 열람 요청을 고려해보겠다”고 전했다.

대한축구협회와 전북 현대, 수원FC가 손준호 측에 판결문을 요청했으나 국제이적동의서(ITC)가 빠르게 발급된 덕에 판결문과 상관없이 국내 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판결문을 취재진에게 공개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준호 측은 “판결문은 우리도 받아보지 못했다. 중국 변호사와 논의해보겠다”고 답했다.

판결문엔 금품수수 혐의에 대한 세부 범죄사실은 물론 금품 대가로 승부조작이 언급됐을 시 승부조작 대상으로 지목된 경기에서의 실제 불법 행위 여부, 방법 등도 적시됐을 것으로 보인다.

손준호는 재판을 앞두고 중국 법원 판사와 당국 고위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20만 위안에 대한 금품수수 혐의를 인정하면 이른 시일 내 석방해주겠다. 한국에서 선수 생활도 이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장 한국의 가족 품에 돌아가는 게 최우선이었던 손준호는 아내, 변호사와 상의 끝에 이 제안을 수락했다고 한다. 다만 손준호는 “금품수수 자체만 인정했지 절대 불법이나 승부조작을 해주는 대가로 받은 돈은 아니라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중국 법원이 20만 위안에 대한 대가성이 있다고 본 건지, 손준호가 20만 위안을 어떤 이유로 받았다고 판단했는지 등은 알 수 없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수원FC)가 11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수원시체육회관에서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 관련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손준호는 지난해 6월 중국 상하이 훙차오 공항을 통해 귀국하려다 공안에 연행됐다. 손준호는 “당시 중국 공안이 아내와 아이들을 언급하며 혐의를 인정하라고 협박했고, 지금이라도 인정하면 이르면 7∼15일 뒤에 나갈 수 있다고 회유했다. 겁도 났고 빨리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무엇인지도 모르는 혐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손준호의 에이전트에 따르면 중국 공안은 당초 손준호에게 ‘60만~65만 위안(약 1억3000만원) 규모의 뇌물수수 혐의’를 씌웠다. 뇌물수수 혐의는 금품수수에 대한 대가성 입증 여부가 관건인데, 손준호는 “중국 공안이 지난해 1월 산둥-상하이전 승부 조작에 내가 가담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준호는 불법 구금, 강압 수사를 못 이겨 거짓으로 자백했으나 이후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60만~65만 위안 뇌물수수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자백을 번복했다고 한다. 이후 구금 기간 내내 무혐의를 호소했고, 재판에선 중국 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20만 위안 금품수수 혐의’만 인정했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축구협회가 “사법기관이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전 산둥 타이산 선수 손준호는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도모하려고 정당하지 않은 거래에 참여, 축구 경기를 조작하고 불법 이익을 얻었다”고 발표한 만큼 판결문에 손준호의 승부조작 혐의가 언급됐는지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