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악의 비극적 참사인 9·11테러 23주년 추모식이 11일(현지시간) 테러 현장이었던 미국 뉴욕 맨해튼과 워싱턴 펜타곤 등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불과 10시간 전 TV토론에서 맞붙었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 추모식에 참석해 짧은 악수를 나눴다. 바이든 대통령은 초당적 단결을 강조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뉴욕 추모식은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그라운드제로에서 이날 오전 열렸다. 추모식에서는 트럼프와 러닝메이트 J D 밴스 상원의원이 먼저 도착했다. 이어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행사장에 등장했다. 해리스와 트럼프는 정중하게 악수를 나눴다. 두 사람은 짧게 대화도 나눴지만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바이든도 트럼프와 악수했다. 모든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푸른색 리본을 왼쪽 가슴이 달았다. 연설은 없었고 비공식적인 정치적 발언도 일절 나오지 않았다. 해리스와 트럼프 사이에는 바이든과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자리했다. 뉴욕타임스는 “해리스와 트럼프, 바이든이 9·11을 추모하면서 정치 전쟁에 일시적인 휴전이 찾아왔다”며 “해리스와 트럼프는 정치적 ‘칼’을 내려놓고 불과 몇 피트 떨어져 서서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엄숙한 순간을 기념했다”고 전했다.
추모식은 성조기를 든 의장대 입장과 국가 연주로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이어 WTC 북쪽 건물에 여객기가 충돌한 첫 테러 발생 시간인 오전 8시 46분에 맞춰 종소리와 함께 묵념했다. 이후 유족과 동료들이 무대에 설치된 2개의 연단에 2명씩 연달아 올라 희생자 약 3000명의 이름을 호명했다.
뉴욕 추모식 후 바이든과 해리스는 펜실베이니아주 섕크스빌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도 참석했다. 이곳은 9·11 당시 납치된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의 승무원과 승객들이 테러범에게 저항하다 추락한 곳이다. 테러범들은 워싱턴의 미국 의회의사당을 공격하려 했으나 탑승객과 승무원들이 테러범들에게 맞서 싸우면서 여객기는 섕크스빌의 들판에 추락했다.
바이든과 해리스는 추락장소 인근에 건립된 ‘플라이트 93 메모리얼’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 참석해 유족들을 위로했다. 바이든은 인근 소방서에서 소방관들을 격려하는 과정에서 9·11 직후 미국의 초당적 단결을 강조하며 그때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이름이 적힌 붉은색 야구모자를 쓰기도 했다. 앤드류 베이츠 백악관 대변인은 소셜미디어에 “대통령은 트럼프 지지자에게 모자를 줬고, 트럼프 지지자는 대통령도 그 모자를 써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잠시 모자를 썼다”고 전했다.
트럼프도 플라이트 93 메모리얼을 찾아 헌화한 뒤 “위대한 날이고 훌륭한 장소”라며 “그들(유나이티드항공 93편 승객과 승무원들)은 환상적인 일을 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