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캉토로프 “빗속 파리올림픽 개막식 연주는 특별한 순간”

입력 2024-09-12 05:00
프랑스 출신으로는 처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가 지난 7월 26일 파리올림픽 개막식 중 레오폴 세다르 생고르 다리 위에서 연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클래식 팬이라면 지난 7월 26일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27)의 빗속 연주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캉토로프는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프랑스인 최초로 우승한 피아니스트다. 캉토로프는 이날 센강의 레오폴 세다르 생고르 다리 위에서 라벨의 ‘물의 유희’와 사티의 ‘짐노페디’를 연주했다.

“개막식 당일 비가 내려 당황스러웠죠. 보안상 이유로 6~7시간 동안 대기하다가 연주를 위해 15분 전쯤 다리로 걸어가면서 흠뻑 젖었는데요. 최선을 다해 연주에 임했고, 기쁨도 컸습니다. 특히 라벨의 ‘물의 유희’를 햇빛 아래가 아닌 빗 속에서 연주했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고 생각해요.”

캉토로프는 최근 한국 언론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파리올림픽 개막식에서 연주한 레퍼토리는 이미 계획된 상태에서 연주를 부탁받았다”면서 “그렇지만 행사를 위해 라벨의 곡 일부분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연주해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연주자에 대한 존중이 느껴져서 기뻤다”고 되돌아봤다.

캉토로프는 오는 10월 5일 통영, 6일 수원에 이어 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두 번째 내한 리사이틀을 가진다. 이번에 브람스 ‘두 개의 랩소디’ 중 1번,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 첫 번째 ‘오베르망의 골짜기’와 초절기교 연습곡 제12번 ‘눈보라’,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제1번, 브람스가 편곡한 바흐의 왼손을 위한 샤콘느 ‘무반주 파르티타’ BWV 1004 등 고도의 피아니즘을 보여주는 레퍼토리들을 들려준다.

그는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으로 구성하는 것을 선호한다. 리사이틀이야말로 다양한 작품 간의 연결성을 찾아보고 소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이번에 포함한 작품들은 각기 다른 비르투오소적인 요구사항들이 있다. 대체로 아주 유명하지는 않은 작품들인데, 해석하는 입장에서 마치 작곡가와 협업하는 느낌이 든다”고 피력했다.

캉토로프는 프랑스의 저명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장자크 캉토로프는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오베르뉴 체임버 오케스트라, 파리 앙상블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지낸 바 있으며 어머니 역시 바이올리니스트다. 바이올린이 아닌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일단 바이올린보다 피아노가 낫다고 생각한다. 하하. 부모님이 어릴 때 내게 바이올린을 시키려고 했지만 별로 끌리지 않았다”면서 “나는 성격상 빨리빨리 배우고 바로 결과를 확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피아노는 연주해보니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금방 알게 됐고 아름다운 소리가 나서 끌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피아노가 까다로운 악기라는 걸 깨달았다. 피아노는 다른 악기에 비해 박자, 페달 등 신경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연주를 하면 할수록 어려움에 더 직면하게 된다”면서도 “내가 피아노를 선택했기에 부모님과 실내악을 연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캉토로프는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이후 전 세계 클래식계에서 가장 핫한 연주자로 등극했다. ‘리스트의 환생’ ‘피아노계의 젊은 차르’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이후 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의 역사에 내가 포함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연주회를 보러 온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음악에 대해 좀더 진지해졌다”고 털어놓았다. 또 “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러 수식어로 나를 불러주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 내게 중요한 것은 무대에서 진실하게 연주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음악적 소명으로 러시아 작곡가 니콜라이 메트너(1880~1951)의 재조명을 꼽았다. 연주자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 것 못지 않게 메트너를 알리는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니콜라이 메트너는 라흐마니노프와도 친분이 있었던 작곡가로, ‘20세기의 쇼팽’으로 생각되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메트너의 음악을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음 세대의 연주자들 또한 메트너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많이 연주할 수 있게 된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