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이 된 비행기…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입력 2024-09-10 08:44 수정 2024-09-10 10:36
저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졌던 60대 남자 승객이 9일(현지시간) 말라위 릴롱궤 공항에 도착한 뒤 안전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8000피트(2438m) 상공. 9일(현지시간) 오전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 말라위 릴롱궤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항로를 따라 순항하던 비행기 내에 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통로를 걷던 60대 남성 A씨가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는 가까스로 손을 뻗쳐 좌석 손잡이를 잡았지만 눈이 튀어나올 듯 팽팽해졌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괜찮으세요?” 승객의 불안한 상태를 감지한 스튜어디스가 A씨를 향해 연신 물었다. 스튜어디스는 승객들과 함께 일단 A씨를 통로에 눕혔다. 바로 그때 미국의 병원 응급실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간호사가 급히 A씨에게 달려갔다. 간호사는 청진기로 A씨의 심장박동을 체크하고 혈압을 재더니 호흡이 곤란한 상태임을 직감했다. 승무원들은 급히 산소통과 비상의료함을 가져왔다. 이어 A씨에게 산소마스크를 씌우고 손가락에 산소포화도를 체크하는 측정기를 끼웠다. 나도 A씨의 벨트를 풀고 다리를 주무르며 작은 도움을 보탰다.

영국에서 온 의사도 가세했다. 의사는 A씨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수액을 맞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거치대가 없는 상황에서 옆 승객이 수액 팩을 높이 쳐들었다. 의사는 A씨 상태를 체크하면서 스튜어디스에게 릴롱궤 공항 도착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총 비행 4시간 중 40분이 남은 상황. 비행기는 응급실이 된 듯 긴박하게 돌아갔다. A씨의 아내는 스튜어디스가 가져온 아이스를 수건으로 싸서 남편의 열을 내리고 동료 승객이 넘겨준 손 팬으로 얼굴에 시원한 바람을 더했다.

다행히 저혈압이던 A씨의 혈압이 오르면서 그는 의식을 되찾았다. 호흡은 여전히 가늘었지만 산소포화도는 92~96를 오르내리며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착륙을 위해 동료 승객들은 A씨를 좌석으로 옮겨 눕혔다. 이윽고 비행기는 릴롱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고 활주로에 대기중이던 안전요원들이 A씨를 부축해 앰뷸런스로 이동했다.

A씨에게 응급조치를 했던 간호사는 베테랑답게 처음 이상조짐을 감지하고 신속하게 대응한 스튜어디스를 거듭 칭찬했다. A씨 부인은 승무원들과 동료 승객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남편을 평화롭게 바라보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듯했다.

A씨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미국 시카고를 출발해 말라위에서 선교활동을 위한 비전트립에 나선 길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응급 상황을 바로 눈 앞에서 지켜보며 8000피트 상공에서도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을 체험할 수 있었다. 또한 위기에 처한 승객을 가족처럼 생각하며 함께 도왔던 사람들의 선한 모습을 보며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릴롱궤(말라위)=글·사진 김재중 기자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