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13) 80세 이발사의 사랑

입력 2024-09-09 18:40 수정 2024-09-09 19:51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섬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전도를 통해 새로운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은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제게는 잊을 수 없는 어른 한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올해 80세 되신 대성이발소 정한표 어르신입니다. 이분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아는 지인이 대성이발소에 가면 이발 면도 드라이 등을 몽땅 1만원에 해준다고 소개하면서입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이발소는 첫인상이 안 좋았습니다. 문을 연 지 40년이 됐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세월 탓인지 환경이 깨끗하지 못하고 이발소 벽면에는 헐벗은 여자 사진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또 항상 너댓 명의 노인 손님들이 모여 시골 말로 음담패설을 섞어 대화를 나눴습니다. 머리를 감아주는 비누는 항상 옛날 빨래비누를 고집했고, 문지르는 솔은 거칠고 때가 꼬질꼬질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머리를 감고 수건을 달라고 했더니 염색약이 묻어 얼룩진 것을 주며 새것이라 했습니다. 냄새는 고약했습니다. 면도는 가죽띠로 날을 갈아서 해주는데 어찌나 아프게 하는지 이래저래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여기 오지 말아야겠다고 단단히 다짐을 했습니다.

정한표 어르신의 이발소 간판입니다. 원래는 어설프게 매달려 있던 것을 사각 파이프로 용접해 틀을 만들어 앞으로 50년은 거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쳐 드렸습니다. 어르신이 마음에 쏙 들어 하셨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앞에서 보면 노후한 이발소인데 이발소와 이어진 건물 뒤편 본체는 ‘원각사’란 이름을 붙인 무당집이었습니다. 그집 옆에 차를 주차하면 늘 안에서 굿하는 소리가 들리고 향 피우는 냄새도 안 좋아 영 기분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런 집에 눈이 침침한 노인이 운영하는 이발소는 이름도 없이 그저 이발 간판만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발소 옆 건물 본체에는 이 간판이 크게 걸려 있어 처음에 이집을 갔을 때 간판 아래 차를 주차하면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냄새가 싫었습니다.

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짐하고 머리를 감았는데 이발사 노인은 머리를 말려준다며 앉으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뭐하시는 분이냐고 묻습니다. 교회 목사라고 하니 자기는 목사님 이발은 생전 처음한다면서 이발소는 방송국 같아서 모든 교회 소식은 다 듣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이야기를 했더니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약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잘 돌봐 준다고 여러 사람들이 말하더랍니다. 하지만 저는 이발사 노인이 무슨 말을 하든지 이발소가 마음에 안 들어서 빨리 끝내고 가려 했습니다. 그랬는데 갑자기 할아버지는 “나는 6년째 걷지 못하는 집사람을 돌보고 있소” 했습니다.

순간 저는 고넬료 가정을 구원하기 전 베드로에게 부정한 음식을 먹이신 사건이 떠올랐고, 방금 전까지 이 집엔 다시 오지 않겠다는 다짐도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절대로 환경과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영혼을 긍휼히 여겨야 한다는 어떤 목소리가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러자 이발사 어르신과 허름한 이발소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르신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었습니다. 어르신은 6년째 뇌졸중을 앓고 계시는 할머니를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시키며 수시로 기저귀를 갈아주시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귀한 인성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목회를 한다는 저를 순식간에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부인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시는 아주 귀한 어르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은 명절만 되면 속이 상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7남매가 지극한 효심이 있어 자기들이 경제적으로 부담할 테니 어머니를 좋은 시설로 모셔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살 수 있다며 명절마다 그 말을 되풀이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르신은 너희들이 돌보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들 난리냐고 언성을 높인다면서 명절 돌아오는 게 싫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내를 돌보는 이유는 가난한 가정을 일으켜 세워 놓고 병든 아내에게 자신이 지은 죄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대부분 섬 노인들은 그런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80세 이발사 노인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