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배민 잡을 ‘사전 지정’ 무산…신속 처벌 ‘플랫폼법’ 좌초

입력 2024-09-09 16:47 수정 2024-09-09 16:57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공정위의 입법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별도의 법을 제정해 신속하게 ‘플랫폼 공룡’의 반칙 행위를 규제하겠다던 정부가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선회했다. 사실상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입법은 무산됐다. 신속 대응을 위해 추진하던 ‘사전지정’도 ‘사후추정’으로 완화돼 쿠팡, 배달의민족 등 주요 플랫폼들은 규제를 피해가게 됐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9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독과점 분야의 반경쟁행위 신속 차단을 위한 제도 보강을 통해 시장 경쟁질서를 보호하겠다”며 공정거래법 추진을 공식화했다.

한 위원장은 “규율 대상은 시장 영향력이 압도적인 지배적 플랫폼”이라며 “당초 ‘사전 지정’ 방침을 발표했으나 업계·전문가·관계부처 의견 등을 종합 검토해 ‘사후 추정’으로 변경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 추정 요건은 현행 지배적 사업자보다 강화해 독점력이 공고한 경우로 한정하되, 스타트업 등의 규제 부담 등을 고려해 연간 매출액 4조원 미만 플랫폼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의 한 음식점 앞에 배달앱 3사 스티커가 붙어있다. 뉴시스

앞서 공정위는 시장 내 독과점 지위를 가진 사업자를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에 지정하는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해왔다. 반칙행위가 일어난 후 사업자의 지위를 판단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해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사전 지정’이 무산되면서 신속 대응을 강조해왔던 플랫폼법의 입법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쿠팡·배민·당근·토스 못 건드리는 ‘사후 추정’
개정 공정거래법은 중개, 검색, 동영상, SNS, 운영체제, 광고 등 6개 서비스 분야에 적용된다. 해당 분야의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 불공정행위를 하면 공정위는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따진다. 지배적 사업자로 판단되면 과징금 상한은 관련 매출액의 8%까지 부과된다. 임시중지명령을 내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다만 지배적 사업자 사후 추정 요건이 까다로워 실효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1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이고 이용자수가 1000만명 이상인 경우, 또는 3개 이하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85% 이상이고 이용자 수가 2000만명 이상인 경우에 지배적 플랫폼으로 판단된다.

다만 이같은 2가지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연간 매출액이 4조원보다 적은 플랫폼은 규율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에 쿠팡, 배민 등은 규제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매출액에 이같은 요건이 적용되면 구글, 애플, 카카오, 네이버 등 일부 플랫폼만 지배적 플랫폼으로 분류된다. 플랫폼법 적용 대상으로 전망되던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토스)’ 중 5곳은 규제를 피해가게 됐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