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②일상에 다시 스며드는 무속, ‘신접함의 현대화’

입력 2024-09-09 09:30 수정 2024-09-09 09:30

한국의 샤머니즘, 무속(巫俗)은 최근 한국 문화 및 미디어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무속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왔지만 우리 문화사 속에서 무속이 처음 흡인력 있는 이야깃거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 시작은 김동리의 근대소설 ‘무녀도(1936)’라고 볼 수 있다. 무속이 한민족의 정신과 일상에 뿌리내린 시간이 그토록 오래됐지만 1930년대 들어서야 대중의 관심을 끄는 문학 소재가 된 것은 무속에 대한 불교와 유교의 거부감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와 고려조의 국교였던 불교, 그리고 조선조의 국시였던 유교 모두 무속을 난잡하고 체계 없는 미신이나 괴력난신으로 치부했다. 이에 무속은 무려 1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저급한 하위문화, 미개한 풍습 취급을 받아왔고 오로지 민중 사이에 떠도는 전설, 민담, 구전설화 속에서만 각광받는 이야깃거리로 남아 있었다.

무속이 1930년대 당시 문화 미디어 업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소설에서 중심소재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회에 기독교 신앙이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교와 유교 모두 무속을 미신으로 규정하고 무속인들을 천시하는 사상이었지만 무속과 한반도 민중 사이에 얽힌 끈끈한 연을 아예 무시하지는 못했다. 반면 구한말에 이르러 처음으로 한반도에 설립된 개신교회는 무속을 반드시 근절해야 할 우상숭배로 규정했다. 당연히 무속인들과 이들에게 의지하는 자들, 그리고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꽤 치열한 긴장 관계가 형성됐고 이런 긴장과 갈등이 김동리와 같은 탁월한 문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기독교 선교사들과 교역자들은 성서 전반에서, 특히 구약에서 강조해 가르치는 샤머니즘에 대한 경계심을 공유했다. 구약에서 샤먼(무당)은 ‘신접한 자’, 히브리어로는 ‘오브(אוֹב)’라고 불렸다. 이 단어는 구약성서에 총 17번 등장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조상신이나 과거 죽은 자의 영에 운명과 앞길을 묻는 자’라는 뜻으로 사용됐다. 구약 학계에서는 이러한 용어 정의가 정론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렇지만 기독교계 전반에서 이 용어 정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실제 ‘오브’라는 단어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된다. 구약시대에 신접한 자들에게 접촉하거나 빙의한 영들이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 죽은 자의 영이라고 해석하는 소수의견이 있지만, 이 죽은 자의 영이 실은 다른 정체를 가진 존재인데 샤먼들은 자기들이 죽은 자의 영과 소통하고 있다고 착각해 잘못된 ‘주장’을 펼친 것이라는 다수의견이 존재한다. 어쨌든 이들 구약 샤먼들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한반도 향촌 곳곳에 퍼져 있던 무당, 박수들의 행태 및 증언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한국의 무당들도 주장하기를 점술과 굿을 통해 죽은 자의 영혼을 몸에 불러들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성서는 만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된 삶을 영위할 것을 가르치며 이 약속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샤머니즘(하나님이 아닌 샤먼에게 삶의 중대한 문제를 내맡기는 것)’을 영적인 중범죄로 규정한다. 이에 한반도의 기독교 복음화는 무속이 한국 사회에서 가진 영향력을 급격하게 축소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여온 서양의학은 무속인을 의지해서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대처해온 한국 민중의 무속 의존도를 크게 약화했다. 그리고 미국식, 일본식 근대화와 산업화가 민족의 생명줄이라 여겼던 1960·70년대에 무속의 쇠퇴는 더욱 가속화됐다. 다만 이런 와중에도 무속이 주된 소재가 되는 문학작품이나 미디어 콘텐츠는 간간이 발표돼 그 명맥을 이어갔다. 천승세 작가의 ‘낙월도(1973)’와 ‘신궁(1977)’ 등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 영영 쇠락할 것만 같았던 무속의 영향력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민족문화 부흥이라는 문화적 명분을 가지고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대중문화를 활용한 우민화 정책을 추진한 신군부 정권과 반외세(특히 반미) 민족자주의 기치를 내걸었던 진보정치권, 야권 인사들과 문인들의 역할이 컸다. 그리고 1998년 진보정치세력의 거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권 획득에 성공하면서 문화, 미디어 업계에서는 무속의 실상과 매력을 알리는 미디어 콘텐츠가 우후죽순 등장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에는 주로 ‘영매(2003)’나 ‘사이에서(2006)’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2010년대에는 ‘곡성(2016)’을 통해 강력한 흥행력을 가진 상업영화 형태로 무속이 문화계의 핵심 키워드로 대두된 바 있다.

올해 초에는 ‘파묘(2023)’가 무속 서사를 다룬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기록하기도 했다. 예능방송에서는 ‘무릎팍도사(2007~2013)’와 ‘무엇이든 물어보살(2019~)’같은 코너들이 무속을 희화화해서 대중에게 친숙함을 어필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OTT 서비스 채널인 TVING에서 실제 무속인들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 ‘샤먼: 귀신전’을 방영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장르문학계에는 빙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만 수백 개가 넘게 발표되는 실정이다.

근래 무속이 세련되고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대중을 매혹하는 문화현상 이면에는 조상신 혹은 사별한 가족이나 친구들의 영과 가까이하고픈 한민족의 전통적인 종교성과 친족주의가 깊게 관여돼 있다. 그것은 곧 불멸을 향한 염원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들은 19세기 말엽 서양 선교사들을 통해 처음 복음을 접하기 전까지 이 불멸을 향한 종교적 염원을 신접한 샤먼들을 통해 이루려 했다. 2000년대 들어와 무속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이 점진적으로 강화되는 현상은 한반도 내 복음화의 둔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오늘날 무속은 환골탈태 중이다. 그리고 이런 전격적 이미지 변신을 위한 방안으로 대중문화를 선택했다. 애초 한국 사회가 정서적으로 무속에 매우 익숙한 곳이니만큼 대중문화를 통한 무속의 문화적 저변 확대는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기독교회는 고등종교로서의 압도적인 위상에도 불구하고 점차 매력 없는 구식의 신앙공동체로 인식돼가고 있다. 무속과 기독교회의 이런 문화적 위상 역전이 진정 우리 한국 사회의 앞날에 긍정적인 일일까. 우리의 앞날과 운명을 무당과 주술에 내맡기는 일이 과연 영화만큼 매력적인 일인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