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법 위에 주먹으로 군림하는 기업가의 아들을 죽였다. 내 아들이 법에서 정한 만큼의 죗값 이상의 목숨값을 치르게 될 것 같다. 평생 쌓아온 내 명망도 다 내려놓고 필사적으로 사고의 흔적을 지워야 내 아들이 산다.
드라마 ‘유어 아너’ 속 명망 높은 판사 송판호(손현주)는 이처럼 판단하고 누구보다 치밀하게 아들이 낸 사고의 증거들을 없앤다. 평생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던 송판호지만, 아들이 맞닥뜨릴지 모를 죽음 앞에 이성을 잃고 추락한다. 하지만 끔찍한 일로 아들을 잃은 조폭 출신 기업가 김강헌(김명민) 역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픈 건 송판호와 다르지 않았다.
사고의 진범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김강헌과 그의 눈에서 벗어나려는 송판호의 부성 대치극을 긴장감 있게 그린 ‘유어 아너’는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이 우상향했다. 특히 손현주와 김명민의 연기 대결이란 평가가 시청자를 드라마로 이끌었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손현주는 “실제로 김명민이 들어올 때는 대단히 무서웠다”며 “지금까지 여러 작품을 하면서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무서우면 무서운 대로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고 표현했다. 상대방과 연기 합을 맞추기보다 ‘저 사람의 모습을 견뎌보자’는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명민과는 연기 대결을 펼친 게 아니라 같이 간 것”이라며 “이 작품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덧붙였다.
송판호는 아들을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지만, 자주 두려움에 떨고 고뇌하고, 죄 없는 사람이 죽는 걸 보며 큰 가책을 느낀다. 자신이 달아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숨통을 조여오는 김강헌을 마주할 땐 식은땀을 흘리며 눈이 충혈되곤 한다. 그렇지만 때때로 아들을 원망하는 듯한 눈빛도 비친다. 손현주는 “원작(이스라엘 드라마 ‘Kvodo’)의 송판호는 아들에게 부드러운 아버지인 것 같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서상 그렇게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며 “내 아들을 위해 모든 걸 걸고 매달릴 수 있는 사람인지라 때에 따라 아들이 밉기도 했다. 그래서 전형적인 방식보단 내 방식대로 표현해보자 해서 그런 감정도 모두 담아냈다”고 말했다.
손현주 역시 남매를 둔 아버지로서 이야기에, 송판호의 입장에 몰입했다. 그래서 어떤 날엔 자신의 행동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상황에 감정이입해 울기도 했다. 하지만 손현주는 송판호의 판단엔 고개를 저었다. 그는 “티랍(극 중 외국인 노동자)을 죽인 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송판호라면 무조건 자수했을 거다. 잘못된 길을 가서 (송판호의) 몸이 고달팠던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시즌2를 희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손현주는 “시즌2가 나올 수 있다면 출연료도 줄일 수 있다”며 “대학로에서 방송으로 넘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항상 목숨 걸고 연기하고 있다. 시즌2가 제작된다면 욕심부리지 않고 열심히 제작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아무도 말한 적 없지만, ‘유어 아너’ 시즌2는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송판호와 김강헌이 반성할지, 어떻게 반성할 것인지, 그걸 시청자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현주는 지난 6월 친형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이날 “당시 경기도 연천에서 힘든 장면들을 촬영하던 중에 형이 세상을 떠나면서 제 마음이 더 혼란스러웠었다”며 “요즘 다시 형 생각이 많이 난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지만 마지막 회 방송까지 지켜보고 형에게 가서 ‘드라마 어떻게 봤느냐’고 물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