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시죠?” 지난 5일 인천광역시 부평반석교회(조정진 목사) 예배당 입구에서 서성이는 중년 남성에게 조정진 목사가 친근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건넸다. 중년 남성도 이내 반색하며 “네, 안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OO님이신가요” 조 목사는 스마트폰 화면 속 리스트에서 상대방의 닉네임을 찾아냈다. “잠시 들어오라”는 조 목사의 말에 남성도 순순히 예배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속했던 도넛 봉지와 라면 상자를 건네고 두 사람은 인증사진을 찍었다.
남성을 보낸 조 목사의 표정이 환했다. 그는 “물건을 받고 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어쨌든 교회에 한 번 들어온 거잖아요. 당근마켓 앱에 남긴 후기를 보면 이분들이 생각보다 많은 감동을 하고 가신다는 걸 느낍니다. 목회자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있을까요.”
당근전도는 교회로 들어온 후원 물품을 나누기 위해 고민하다가 처음 시작됐다. 처음엔 도넛과 라면을 가지고 길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나눴는데 거절하는 이들이 많았다. 조 목사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한 끝에 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과 전도를 위한 ‘미끼’로 여겨진 나눔 물품이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 목사는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활용하기로 했다. 당근마켓은 누적 가입자 수 3600만명, 월간 활성 사용자 수 1800만명을 자랑하는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당신 근처’를 의미하는 당근마켓의 이름처럼 지역 주민 간의 거래와 소통을 촉진하는 특성이 있다. 조 목사는 ‘도넛과 라면을 나눕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렸고 문의가 이어지면서 당근전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나눌 때마다 문의가 빗발쳤어요.” 조 목사는 당근전도의 성과가 기대했던 것보다 폭발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온라인을 통해 나누려는 사람과 필요한 사람이 만나니 불필요한 오해가 줄고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를 찾아오는 구조가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교회에 대한 신뢰도 싹틀 수 있었다는 게 조 목사의 설명이다. 나눔은 4주간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진행됐는데 총 200여건의 문의가 접수됐다. 이 중 약 150명이 교회를 방문해 도넛과 라면을 받아갔다.
당근마켓 아이디 ‘젝스’(63)씨도 이 150명 중 한 명이었다. 다자녀 가정을 돌보며 처음에는 물품을 받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인천의 한 교회 집사라는 그는 교회 안에서의 나눔에 감동해 2주 전부터 나눔이 있는 날 교회로 와서 도넛 포장을 돕고 있다. 젝스씨는 “길에서 물건을 주면 의심할 텐데 교회 안에서 정중히 건네니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그는 교회가 강요 없이 물품을 나누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봉사자인 당근마켓 아이디 ‘낭만여행’(64,여)씨는 비기독교인이다. 이웃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교회의 모습이 그에게 호감으로 다가왔고 나눔에 동참하기 위해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눔 받으러 왔죠. 근데 남자분이 서서 이거(도넛) 포장해서 주는 거 쉬운 일 아니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쑥스럽지만 손을 보태기 시작했어요.” 그는 “사람을 끌어당기면 오히려 멀어질 수 있다”며 “목사님이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설명했다.
조 목사는 교회 밖에서의 나눔보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진 나눔이 전도에도 더 큰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교회 밖에서 물품을 나눠주면 전도 미끼로 보일 수 있지만, 교회 안에서 나누었을 때는 신뢰가 쌓입니다.” 실제로 당근전도를 통해 교회를 방문한 2명의 청년과 2명의 장년이 새롭게 교회에 등록했다. 이들 모두 온라인을 통해 교회와 연결됐고 나눔을 통해 교회의 일원이 됐다. 가족의 전도 소식을 들은 다른 교회 교인이 사역을 위한 10만원 정기후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부평반석교회는 2020년에 설립된 작은 상가교회다. 조 목사는 올해 4월 부임했다. 그는 작은 교회도 충분히 지역사회와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 목사는 “당근전도는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돕는 새로운 방식”이라며 “작은 교회라고 해서 나눔을 못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작은 교회일수록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도는 물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당근전도를 계속할 뿐 아니라 다른 교회 목회자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후원창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천=글·사진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