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은 실수를 저질러도 이득을 볼 수 있는 점부터 계산한다. 이런 ‘왕호적 사고’야 말로 한화생명 ‘피넛’ 한왕호가 LCK 6회 우승을 이룬, 그리고 7번째 우승까지 한걸음만을 남겨놓은 원동력이다.
한화생명e스포츠는 7일 경주 실내 체육관에서 열린 2024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시즌 결승 진출전에서 T1에 3대 1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이튿날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 젠지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르게 됐다. 한화생명이 결승전에 진출한 건 2016년 이후 처음이다.
한화생명이 8년 만에 거둔 성과와 별개로, 이날 마지막 세트에서 눈에 띈 건 세주아니를 플레이한 한왕호의 룬 선택이었다. 일반적으로 정글러들은 세주아니를 플레이할 때 난입이 아닌 여진 룬을 선택한다. 한왕호 역시 이날 2세트에서는 여진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4세트에서 난입을 골랐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한왕호가 직접 룬 선택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밝혔다. 한왕호는 웃는 얼굴로 “룬 선택은 실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트(3세트)에 골랐던 뽀삐 룬을 그대로 선택했다”면서 “돌거북을 먹을 때쯤에 룬이 난입이란 걸 팀원들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왕호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룬의 장점을 쏙쏙 이용하기만 했다. 그는 “당연히 룬을 잘못 들어 아쉬웠지만, 못 쓸 룬도 아니다. 후반은 난입이 더 좋다”며 “초반에 싸움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 조합이었다. 운영 단계에서 마법의 기민함, 물 위를 걷는 자 룬 덕분에 잘 따라갔다고 생각해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큰 무대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정글러는 결승 무대가 안방처럼 편안하고 익숙하다. 한왕호는 “결국 큰 무대에 가면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에서, 한타에서 승패가 나뉜다”면서 “영원한 것도, 당연한 것도 없다. 오늘 우리 경기력이 좋았든 안 좋았든 젠지의 우세를 생각하실 것이다. 꼭 재밌는 일을 만들어내겠다”고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2016년, 팀의 전신 락스 타이거즈에서 첫 우승을 맛봤던 그는 8년 만에 소속팀으로 돌아와 팬들을 다시 결승 무대에 초대했다. 한왕호는 “제 첫 우승이 8년 전 그때였다”면서 “그때 응원해주신 팬분들이 아직도 남아계셔서 좋은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또 “제가 팀을 많이 옮겨 다녔다. 돌이켜보면 프로 생활을 하면서 다른 팀으로 갔을 때 그 전년도보다 성적이 좋아지거나, 경기력이 좋아지면 내 기분도 좋아지더라.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기분이 좋다”면서 “내일은 1세트가 중요하다. 1세트를 잡는다면 3대 1 우승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주=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