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만 믿어. 무조건 받아줄게!”
지난 5일 오후 4시쯤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석정리의 한 물품 보관 창고. 순찰 중에 소방당국의 대응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온 평택경찰서 포승파출소 1팀 구자웅 경장과 김관식 경사는 깜짝 놀랐다. 불이 난 3층짜리 건물의 2층에서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 남자아이가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창고 안으로 진입하려 했지만 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김 경사는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불이 이미 많이 진행돼 있었고, 출입문 쪽에도 불길이 있어 보호장구 없이 들어가는 게 불가능했다”며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혼자 빠져나오는 것도 여의찮은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김 경사는 구 경장과 함께 주변을 살피며 아이 구조에 사용할 장비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땅한 물품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를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들이 받아줄게. 뛰어내려! 아저씨들이 어떻게든 받을게. 무조건 받을게!”
그러나 아이는 겁을 먹은 채 멈칫거렸다고 한다. 김 경사와 구 경장은 그런 아이를 침착한 태도로 다독였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아저씨들이 꼭 받아주겠다”고 외쳤다. 주변에 있던 인근 주민 한 명도 힘을 합쳐 아이를 안심시켰다.
결국 아이가 뛰어내렸고 김 경사와 구 경장, 주민은 아이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세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떨어지는 아이의 팔과 다리를 빠르게 잡았다고 한다. 김 경사는 “아이가 저희 쪽으로 잘 뛰어내려 줬다”고 말했다.
구조에 나선 세 사람 모두 다친 곳은 없었다고 김 경사는 전했다. 아이는 다리 부위에 염좌 등의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며, 현재 통원 치료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김 경사는 “현장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잘 걸었고,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김 경사에 따르면 구조된 아이는 창고 주인의 아들인 초등학교 6학년 A군으로, 키 153㎝에 43㎏의 약간 마른 체형이라고 한다. A군이 있던 창고 2층은 A군의 부모가 사무실처럼 이용하는 곳이었다.
A군은 이날 몸이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지 않았고, 부모님과 함께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A군의 부모가 잠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 불이 났고, A군 홀로 창고에 갇히게 됐다. 당시 창고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소방당국은 전기적 요인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자세한 화재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A군의 부모는 이후 김 경사와 구 경장에게 아이를 구해줘서 고맙다는 뜻을 거듭 전해왔다고 한다.
김 경사는 “당시 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정확히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떻게 받았는지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라며 “‘아저씨들이 받아주겠다. 어떻게든 받겠다’고 소리쳤던 것만 생각난다”고 당시 상황을 돌이켰다. 이어 “경찰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지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