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미얀마를 위한 기도

입력 2024-09-05 17:48

불과 3년 반 전인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기 이전 미얀마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던 기회의 땅이었다.

2011년 개방 이후 10년간 황금의 땅이라는 뜻의 ‘엘도라도’라고까지 불렸었다. 세계 각국으로부터 투자자들과 관광객이 몰리고 날마다 새로운 시설과 건물들이 들어서는 정말 부흥하는 나라였다. 그런 추세로 약 10년만 더 발전하면 미얀마는 중국, 베트남에 이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나라는 면모를 일신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아웅산 수치 여사의 민선 정부가 권력 기반을 충분히 다지지도 않고 군부의 기득권을 줄이면서 2차 집권을 시도한 게 패착이 됐다. 기득권 축소에 반발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판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이에 국제사회는 군부를 규탄하고 미얀마에 제재를 가하면서 미얀마의 고난은 다시 시작됐다.

1988년 소위 ‘샤프란 봉기’ 이후와 마찬가지로 미얀마는 다시 암흑의 시대로 들어서 버렸다. 당시 학생들과 승려들이 군부 통치에 저항해 봉기한 것을 군부가 무력으로 진압한 결과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암흑의 시기를 겪게 됐다. 그 이후 개방정책으로 제재가 풀리면서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됐는데, 쿠데타로 인해 다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대학교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환율은 급락하면서 시민들의 삶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제재로 인해 군부 지도부가 타격을 받기보다는 민중들의 삶만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임금이 1/4 수준으로 급감하고 주유소마다 기름을 구하기 위한 행렬들이 장사진을 치는 고단한 삶이 국민에게 강요됐다. 게다가 정당성이 없는 군부정권에 대해 시민군과 지방 군벌들의 도전이 거세게 전개되면서 미얀마는 내전 상태에 빠졌다. 한때 막강했던 군부의 지배력은 점차 약화하기 시작해 이제는 변방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상실했다. 미얀마는 중심과 변방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변방은 각 군벌이 분할지배하면서 국가가 분열돼 사실상 실패국가로 이제 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얀마의 장래는 더욱 암담하고 시민들의 삶에 절망의 그늘이 깊어지고 있다.

한때 동남아의 강국이었고 자원 부국으로 정치만 잘하면 곧 지역 강국의 지위를 회복할 것으로 여겨졌던 미얀마가 이제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어 정말 안타깝다. 과거 미얀마는 서쪽으로부터 밀려 들어오는 이슬람의 진공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인도차이나반도가 불교 지역으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한 나라가 미얀마의 전신인 버마였다. 육로 진출이 차단된 이슬람 세력은 대신 바닷길을 따라 말레이, 인도네시아와 부르나이, 필리핀까지 전파됐다.

불교국가이지만 순박한 미얀마 국민은 다른 종교에도 비교적 개방적인 면을 보인다. 그래서 개방 이후 수백 명 넘게 파송된 우리 한국 선교사들은 전도의 열매를 한창 맺어가던 나라였다. 이런 추세가 지속했다면 미얀마는 불교국가에서 기독교 국가로 변신한 한국의 모델을 따를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변방 소수민족 중 카친족과 카렌족은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여 민족의 90% 이상이 경건한 교인이라는 놀라운 면모도 가지고 있다. 이 민족들은 생활 속에서 믿음이 일상화될 정도로 참 그리스도인들이어서 오히려 우리가 배울 점이 있는 교인들이었다. 이런 면에서 미얀마는 기독교 선교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될 수도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국가가 파편화돼 가는 상황 속에서 외부와 차단된 미얀마에 선교를 위한 물질적 지원도 전달되기도 힘들어 선교의 불길도 많이 약해지고 있다. 반면에 이런 질곡의 상황 속에서 미얀마 국민은 불교와 결탁한 군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국교로 여기며 믿었던 불교에 대한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암흑 속에서 무엇인가 소망의 불빛을 찾으려는 미얀마 국민에게 지금 상황이 오히려 전도를 위한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사람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의 길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역경을 거치면서 미얀마는 불교국가라는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미얀마가 거듭 태어난다면 여전히 무궁한 발전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복귀할 것이다. 이런 날이 속히 오도록 정말 기도가 필요한 때이다.

특히 기독교계에서는 미얀마 국민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이다. 그래서 변방 카친족, 카렌족의 기독교가 미얀마 국민의 기독교가 될 수 있도록 기도가 필요하다. 변방 군벌이 중앙으로 진격해 나가듯이 복음도 변방에서 중앙으로 전파돼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 역사의 기관차는 강력하지만, 기도라는 철도가 깔린 곳으로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백순 한국아세안친선협회(KAFA) 이사
△서울대 독문학과 졸업 △주미얀마·주호주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역임 △현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한국아세안친선협회(KAFA)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