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 넘어선 김헌곤 “자신이 힘든 걸 인정해주세요” [요.맘.때]

입력 2024-09-06 00:02 수정 2024-09-06 00:02
왼쪽부터 삼성 라이온즈 소속 타자 김헌곤, 김영웅. 뉴시스

약 2년 전 시작된 슬럼프는 이듬해 부상까지 더해지며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김헌곤(35)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지난해 1군에서 뛴 경기는 여섯 번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무안타를 기록했다. 처음 프로에 입문할 때부터 줄곧 삼성에서 활약해온 베테랑은 연봉이 억대에서 6000만원까지 떨어지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그의 올해는 다르다. 기량을 완전히 회복해 ‘반전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

김헌곤은 최근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하루하루가 혼자와의 싸움이었다”며 슬럼프에 시달리던 시절을 회상했다. 이날 인터뷰는 삼성 라이온즈와 정신건강 분야 비영리단체(NGO) 멘탈헬스코리아의 ‘이맘때(이제, 마음 건강을 챙겨야 할 때)’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보건복지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가 후원했다.

김헌곤은 경기력이 부진했던 당시 자신의 상태를 “극단적이었다”고 표현했다. 원정 경기를 하러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이 세상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도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는 “졸음은 밀려오는데 잠을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야구장에 가야 하니까 두려움 때문에 잘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9일 오후 광주 북구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회초 1사에서 삼성 2번타자 김헌곤이 안타를 친 뒤 1루에 진출해 있다. 뉴시스

괴로움에 발버둥 치던 그를 도운 건 ‘명상’이었다고 한다. 한 외국인 선수가 명상하는 모습을 본 게 계기가 됐다. 그 선수가 알려준 대로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헌곤은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라. 그때부터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명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헌곤은 명상할 때 스스로와 대화를 한다고 했다. “왜 불안하지?”라고 묻고, “야구를 잘하고 싶어서 그렇구나”라고 답하는 식이다. 불안의 원인을 찾고 나면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조언을 해준다. “초심을 생각해 봐. 처음에는 야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잖아. 야구를 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잖아”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김헌곤은 “내가 힘들어하는 걸 빨리 알아차리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힘들다는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지만 힘들어하는 나도 나 자신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이어 “나 역시 아직도 안타 하나에 일희일비한다. 하지만 그 기복을 줄이려 노력하는 것”이라며 “감정에서 한발자국 물러나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19일 대구 수성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뱅크 KBO리그 SSG 랜더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6회말 2사 1,2루 상황에서 삼성 김영웅이 역전 2타점 2루타를 때리고 있다. 뉴시스

이제 ‘영웅시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러운 김영웅(21)은 자신의 잠재력을 굳건히 믿는 방식으로 ‘멘털’을 관리한다. 프로 데뷔 후 다소 부진했던 그는 3년 차인 올해부터 ‘에이스’로 급부상하며 마음껏 기량을 펼치고 있다. 초반 2년 동안 벤치에 앉아 있는 날이 길어질수록 그는 좌절하는 대신 ‘시합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을 되새겼다고 한다.

그 열망은 집요한 연습으로 이어졌다. 우선 배트를 잡는 방법부터 고쳤다. 김영웅은 “(배트를) 짧게 잡으면 못 치겠더라”며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모두 짧게 잡으라고 했는데, 아쉽지 않으려면 실패를 하더라도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믿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영웅의 단호함에 박진만 감독은 수긍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김영웅은 “원래 의지가 강한 편은 아닌데 야구에만 그런 것 같다”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믿으려 한다”고 했다. 그러다가도 불안함이 엄습할 때면 “괜찮아, 뭐 어때. 신경 안 써도 돼”라며 용기를 낸다고 그는 전했다.

경기장서 ‘마음건강’ 이벤트… “작은 것에 감사”

캠페인을 주최한 멘탈헬스코리아는 삼성과 KT위즈의 경기가 열렸던 지난달 13일 라이온즈파크에서 정신건강 관련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했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챗봇’으로 자신의 마음 건강을 확인하는 부스 등 다양한 야외 이벤트를 마련했다.

행사에 앞서 삼성 소속 선수들의 멘털 관리 비법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오승환(42)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복잡하게 생각하기보다 간단하게 생각하려 노력한다”고 했고, 구자욱(31)은 “조용한 곳에서 편안하게 휴식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재현(21)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전했다.

방송인 박명수가 삼성 라이온즈와 KT위즈의 경기가 열린 지난달 13일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멘탈헬스코리아 관계자들과 인터뷰 하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 제공

이날 경기의 시구자로는 방송인 박명수가 나섰다. 박명수는 ‘슬럼프 극복 비법’을 묻는 질문에 “늘 슬럼프”라고 유쾌한 농담을 던진 뒤 “욕심은 끝이 없는 게 아니겠느냐. 하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요즘, 당신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요.맘.때]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마음 돌봄’의 시각으로 조명합니다. 이슈마다 숨어 있는 정신건강의학적 정보를 짚고, 때론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과 소소한 힐링도 선물해 드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