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라도 좋아” 日편의점 중국인 알바의 속사정

입력 2024-09-05 06:01
일본 도쿄의 한 편의점. 로이터연합뉴스

상대적으로 낮아진 임금과 엔화 가치 하락으로 ‘돈 벌기 힘든 나라’로 불리는 일본에서 정착을 목표로 하는 외국인이 오히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 유학생은 치열하게 경쟁하며 큰돈을 벌기보다 덜 벌더라도 여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일본을 찾고 있다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외국인이 일본을 바라보는 관점이 고임금과 ‘엔고’ 이점 때문에 현지로 몰려가던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 오사카로 건너온 장텡페이(19)씨는 아사히신문에 “돈을 벌기보다는 여유롭게 생활하고 싶다”며 “돈보다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사카 히가시나리구 ‘에비스 일본어 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오사카부 내 사립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에비스 일본어 학교는 2019년 개교 당시 2명이었던 유학생 수가 5년 만에 약 220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올봄에만 100명 넘는 신입생을 맞았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 가장 많은 유학생은 중국인이다. 이들은 예전처럼 높은 임금을 기대하며 아르바이트에 열중하는 이미지와 다르다고 아사히는 설명했다

올해 4월 일본 전국에서 운영 중인 일본어 학교는 877곳으로 지난 10여년 사이 약 400곳이 늘었다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혼마 세이야 기자는 전했다.

치열한 경쟁 피해 일본으로… 알바는 ‘공부용’
혼마 기자가 만난 중국인 유학생들도 아사히가 인터뷰한 장씨와 비슷한 이유로 일본 정착을 원했다.

지바(千葉)시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량쉐인(가명·25)씨는 “인구가 많은 중국에선 입시 공부가 정말 힘들다. 엄청난 학력 사회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계속 ‘공부하라’고 말했다”며 “일본에서는 공부도 생활도 스스로 다 결정할 수 있어서 자유롭다고 할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량씨는 “중국에 있을 땐 항상 억압받는 느낌이었다”며 “일본에서 취업하고 싶은 건 아이를 이곳에서 키우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은 경쟁이 치열해서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고 그는 덧붙였다.

중국 대입시험장 앞. AFP연합뉴스

량씨는 세 번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학비나 생활비 때문이 아니다. 그는 “생활비는 보조를 받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일본어 공부를 위해 하고 있다”며 “가게 점장님이 친절하고 이야기도 자주 들어준다”고 말했다.

에비스 일본어 학교 쓰지모토 요시테루 교장은 “예전에는 일본어 학교 유학생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본국에 송금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학생도 꽤 있다”고 아사히에 말했다.

중국 동북부 출신인 량씨는 외동딸로 부모는 공무원이다. 고등학교 마지막 1년을 교환학생 제도로 교토부 내 학교에서 보낸 것을 계기로 고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왔다. 지바 지역 사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일본에서는 심리학 전공으로 취업이 어렵다’는 생각에 도쿄 신주쿠구 2년제 IT 전문학교에 새롭게 입학했다.

中명문대 졸업생, 대학원 낙방 후 일본으로
도쿄 시내 편의점에서 일하는 중국인 아르바이트생 왕쥰위(25)씨는 중국 ‘지방중점대학’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인재다. 그는 중국에서 대학원 시험에 떨어진 뒤 일본 유학을 결심했다. 부모가 과거 일본에서 생활한 적이 있고 자신도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해져 친밀감을 느꼈다고 한다.

현재 국립대 연구생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왕씨 역시 외동아들이지만 일본에서 취업하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 그는 “일본은 1분 단위로 잔업 수당을 지급해 주는데 이건 중국에선 없는 일”이라며 “중국은 주 2일 휴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요즘은 젊은이들의 취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왕씨는 “일본에 와서 보니 대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즐거워 보였다”며 “나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즐겁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좋은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에 들어가지 않으면 내 인생은 없다고,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에선 학력 경쟁과 관련이 적은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다”며 “이런 게 중국과 다르다”고 비교했다.

일본 도쿄 시부야. AP연합뉴스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일본 대학·대학원 입시와 취업을 돕는 ‘행지학원’ 관계자는 “중국 IT업계에서는 ‘996문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6일 근무)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 35세 정년설’ 등으로 인해 안정된 노동 환경을 찾으려고 일본 IT업계에서 취업하고자 하는 유학생이 많다”고 혼마 기자에게 설명했다.

행지학원 양거 원장은 “중국의 치열한 학력 경쟁을 이겨내고 경제적 지위를 구축한 부모 세대 중에서 입시 경쟁이 중국만큼 심하지 않은 일본 대학에 자녀를 보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엔저 영향으로 교육 투자 비용도 저렴하게 해결된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인에게 일본은 유럽 국가와 미국에 이어 6번째로 인기 있는 유학지로 여겨진다”며 “이런 흐름 속에서 앞으로 일본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유학생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학생 사상 최대 경신 중… 65% 정착 원해
독립행정기관인 일본학생지원기구(JASSO) 조사 결과 일본 대학이나 일본어 학교 등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은 2011년 5월 기준 약 16만4000명이었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9년 5월 약 31만2000명까지 늘었다. 일본 정부가 2008년 수립한 ‘유학생 30만명’ 목표를 약 10년 만에 달성했다. 이 규모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으로 2022년 5월 약 23만1000명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5월 약 27만9000명까지 회복했다.

아사히는 “2019년 규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감소에서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다”며 “일본어 학교 등 일본어 교육기관의 유학생 수는 9만719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올해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혼마 기자는 야후뉴스 특집보도에서 “일본 정부가 같은 해(2023년) 새롭게 ‘유학생 40만명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올해 5월 시점 유학생 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일본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약 65%에 달한다”고 해설했다. 중국으로 돌아가 취업하겠다는 중국인 유학생은 19% 정도다.

일본 도쿄 신주쿠역 앞. AFP연합뉴스

다른 나라 출신 유학생 유입과 이들의 일본 정착률도 높아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일본 내 유학생 정착률은 지난 10년간 높아졌고 국제적으로 봐도 높다”고 평가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신문은 “베트남과 네팔 유학생 증가도 그 이유 중 하나”라며 “2011~2017년 일본에 온 유학생 중 5년 뒤에도 일본에 남아 있는 비율은 각각 57%, 80%였다”고 설명했다.

JASSO 집계로 지난해 5월 1일 기준 일본 내 외국인 유학생의 국적은 중국, 네팔, 베트남, 한국, 미얀마 순이었다. 네팔은 2022년 3위에서 베트남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섰다.

엔저 고마운 동남아 학생들… 아직 임금도 높아
동남아 출신이 일본에서 취업하려는 이유가 중국인 유학생과 똑같지는 않다. 엔화 약세 덕에 저렴해진 학비와 생활비는 동남아 출신 유학생에게 중요한 조건이다.

일본 대학에서 마케팅을 공부하는 베트남 출신 보 티 투짜(29)씨는 “일본어 학교는 학비만 해도 연간 약 70만엔이 들지만 엔화 약세 덕분에 학비가 저렴해졌다”며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은 엔화 약세를 걱정하지만 저는 공부하러 왔다”고 아사히에 말했다. 나라현 공장에서 기술연수생으로 일한 적 있는 그는 귀국해 일본계 기업에서 통역사로 일하다 공부를 위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미얀마에서 온 남학생은 아사히에 “미국도 좋아하지만 일본은 특별히 부유하지 않아도 올 수 있다”며 “일본 대학에 진학한 뒤 호주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일본에서의 벌이도 자국에서보다 낫다. 혼마 기자는 “일본의 경제적 지위가 낮아졌다고는 해도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네팔의 20배 이상, 베트남의 약 8배로 여전히 ‘꿈이 있는 나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해설했다. 네팔과 베트남 등에서 온 유학생 중에는 ‘유학’이라는 명목을 들지만 실제로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온 젊은이도 적지 않다고 그는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