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인 바이블] ①창조에서 말하는 선교 목표

입력 2024-09-04 08:46 수정 2024-09-04 08:46

오늘날 기독교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해있다. 외부적으로는 복음이 비웃음 저항 핍박을 받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선교의 방향에 대해 혼동된 시각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근본인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말씀하는 선교를 숙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는 구약과 신약에서 핵심적인 주제들을 가지고 10회에 걸쳐 칼럼을 진행하고자 한다.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됐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창조됐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기에 창조주와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창 1:26).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며, 하나님 관계를 떠나는 것은 곧 불행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인간 행복의 가장 깊은 근원은 인간의 환경 여건이나 부 명예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마 22:37).

하나님은 인간과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으로 보살피시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바르고 행복한 관계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창조 세계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라는 제목 하에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소요리 문답을 통해 말한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관계를 깨버리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길을 걸어갔다. 창세기 3장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인간은 흙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참되나 인간은 그 길을 버렸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은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창 3:22)”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인간들이 신도 아니면서 마치 신인 것처럼 행동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그 결과 인간은 엄청난 죄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즉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육체적으로는 질병 쇠퇴 죽음의 침범을 당한다. 사회적으로도 질투 폭력 살인과 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인간이 창조질서를 어기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죄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아울러 인간 이외 다른 피조물들 불행 역시 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발생한 것이다.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불행하게 된 것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파괴한 타락이 놓여있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선교가 필요한 이유를 무엇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바로 인간의 타락이다. 타락했기에 선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런 이유로 선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다른 많은 선교 사역들이 필요하지만 역시 가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선교 사역은 타락한 인간의 회개와 회복이다.

오늘날 에큐메니칼 신학을 중심으로 피조 세계의 회복도 선교 과제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부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이러한 의견을 찾을 수 있다. 그 하나의 예로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따라서 총체적 선교가 인간들만을 포함한다면 (이것이 설령 인간들을 총체적으로 포함한다 해도) 그리스도께서 화목케 하기 위해 피를 흘리신(골 1:20) 나머지 피조물들을 배제한다면, 그러한 선교는 결코 총체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 외의 다른 피조물은 복음을 나누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회개의 결단을 요구할 수 없기에 선교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관리와 보살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 점에서 창조세계 돌봄의 문제는 선교적 과제라기 보다는 윤리적 과제다.

안승오 교수는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과 미국 풀러신학대 선교대학원을 마쳤다. 필리핀 선교사로 활동했고 현재는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과 영남신대 선교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