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6년 만에 다시 선 강단” 이덕주 감신대 은퇴교수

입력 2024-09-02 10:39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 전경. 국민일보DB

은퇴 후 받은 은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회개와 반성이다. 현역 때 몰랐던 나의 한계와 실수, 설혹 알았다 하더라도 권위와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내 오류를 깨닫고 “그때 왜 그랬을까”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할 때가 많다.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말씀을 읽다가도 그런 깨달음이 온다. 말씀이 새롭게 읽힌다. 은퇴 후 읽으니 그 뜻이 깊고 오묘하다. “아, 이 말씀이 그런 뜻이었구나” 무릎을 치며 감격한다. 그러면서 “왜 이제야 깨우쳐 주시는 거야. 현역 때 알았으면 보다 멋진 설교를 했을 텐데” 아쉬움도 느낀다. 늦게나마 깨우쳐 주심에 감사하며 ‘새로 읽힌’ 말씀을 노트에 적는다. 내가 말씀을 읽는다기보다 말씀이 나를 읽는다. 말씀에 읽혀진 나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회개의 농도가 짙어졌다.

그렇게 깨달은 ‘말씀 노트’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불러주는 전화가 왔다. 주일 설교와 부흥회, 사경회, 어떤 때는 ‘심령 부흥회’ 현수막을 걸고 강사로 초청한다. 은퇴 후 ‘피동태’로 살기로 작정한 터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부르면 간다.” 그러다 보니 현역 때보다 더 자주 설교할 기회가 생겼다.

그랬다. 말씀이 먼저였다. 말씀을 넣어 주시고 나중에 전할 기회를 주셨다. 말씀을 들려주신(깨닫게 하신) 다음, 들을 귀를 보내주신다. 말씀이 사람을 모은다. 공간과 환경을 탓할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말씀이면 들을 사람을 보내 주신다.

설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강의도 그러했다. 은퇴 후 현역 때 강의한 내용을 돌아보니 허점과 오류투성이다. 배우자마자 곧바로 전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보다 ‘남의 말’을 전하기에 급급했던 현역 시절이었다. 설익은 강의를 들어야 했던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때 왜 이 자료가 눈에 띄지 않았을까. 이 사건의 신학적 의미는 그게 아니었는데.”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은퇴하고 학교를 떠난 처지에….

그러던 차에 지난해 새로 총장으로 선출된 후배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축하한다”는 내 말에 그는 다짜고짜 “형님, 학교에 좀 나오세요” 했다. 강의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학교를 은퇴하면서 후배와 제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강의뿐 아니라 학교 행사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나였다. ‘산뜻하게’ 떠나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결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총장에게 강의하러 나가기 어렵다고 하자 그는 언성을 높이며 “학생들이 원해요”라고 말했다. 총장 말이 정치적인 멘트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학생들이 원한다”는 말에 주춤했다.

총장 전화는 나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비록 ‘은퇴한’이란 수식어가 붙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목사요 교수로 불린다. 목사와 교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양 없는 목자가 없고 학생 없는 교수가 없다. 학생이 교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생을 위해 있는 것이다. 학생이 부르면 가야 하는 것이 교수의 사명 아닌가.

그렇게 해서 올해 봄 학기 학교 강단에 섰다. 현역 때 연구 부족으로 하지 못했던 ‘한국 역사와 기독교’란 과목으로 강의했다. 그렇게 6년 만에 다시 선 강단에서의 첫 시간, 은퇴한 노교수의 강의를 듣겠다고 강의실을 찾아온 학생들을 보는 순간,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목회 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가는 현실에서도 목회자의 꿈을 품고 신학교를 찾아온 학생들의 진지한 눈빛을 보는 순간,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현역 때 느낄 수 없었던 두려움이자 감동이었다.

강의실의 학생들이 소중했고 그들의 발제 또한 진솔했다. 50년 후배 MZ세대 학생들의 기발하고도 창의적인 질문과 토론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공자의 가르침을 몸으로 경험했다. 현역 때 저질렀던 실수와 오류를 깨닫게 해 주신 것만도 큰 은혜인데 그것을 만회하고 보완할 기회까지 주시니 실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이다.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 국민일보DB

글=이덕주 목사·감리교신학대 역사신학 은퇴교수·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사장

편집=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