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욱주 교수의 기독교 문화비평] ①장르소설 속의 환생, ‘윤회사상의 대중화’

입력 2024-09-02 09:00 수정 2024-09-02 09:00

일상언어는 그 나라 혹은 민족의 전통적 종교관념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전통적 일상언어 가운데 당연하게도 유교, 불교, 도교, 그리고 무속 사상이 반영된 관용어구나 어휘들이 숱하게 발견된다. 유교 및 무속적 표현인 ‘조상님이 도왔다’라든가 도교적 표현인 ‘도를 닦다, 득도하다’와 같은 관용어, 불교 용어인 ‘인연, 찰나, 해탈’ 같은 어휘들이 한국의 전통적 종교성을 반영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일상언어 가운데서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표현이나 어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보면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상대적으로 매우 짧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일상언어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소설 역시 다양한 모양새로 전통적 종교관념들을 담아낸다. 근래 한국 출판시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장르 소설의 대약진이다. 종이책 판매의 15%, 전자책 판매의 30%(2019년 기준)를 장르 소설이 차지하고 있다. 근래 한국 장르 소설의 대표적 서사 공식이라 한다면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을 지목할 수 있다. 이 서사 공식이 한국 판타지 장르 소설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게 된 것은 2010년대 장르 소설의 플랫폼이 웹 소설로 옮겨지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일부 작품은 미디어믹스 작업을 통해 드라마로 재생산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 사람이 죽은 다음 새로운 시공간, 새로운 인연의 거미줄 속에서 다른 삶을 이어간다는 생각은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반영한다. 그런데 사실 윤회 사상은 전통적으로 한국 불교계의 주류 사상체계였던 선불교에서 학문적으로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론이다. 한국 불교계는 윤회보다 연기(緣起: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불교적 법칙에 따른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는 인연의 이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윤회란 연기 개념을 삶에 적용하면서 나오게 된 해석 가운데 하나로서 전근대 한국인들에게 널리 수용된 통속적 불교 관념이다. 정통 선불교 사상체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 통속적 종교관념이 한국에서 불교적 인간 이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윤회 사상의 강력한 대중성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삶이 유일한 삶이 아니라는 것, 삶은 수없이 반복되고 그 가운데는 간혹 지금의 삶보다 훨씬 나은 삶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감 혹은 욕망이 윤회 사상을 매력적인 것으로 비춰지게 한다.

기독교 신학은 윤회 사상 혹은 환생이론이 인간의 삶과 영혼에 대해 크게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준다는 점을 지적하고 질타한다. 일례로 고대 로마제국 시대의 서구 기독교회는 환생이론이 교회 내에 유입되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당시 교회가 상대했던 환생이론은 불교가 아니라 플라톤의 사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이레니우스,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같은 교부들, 그리고 초기 기독교 신학의 집대성자 어거스틴 같은 이들은 플라톤 철학이 기독교 신학을 체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지만, 환생이론은 전적으로 비기독교적이라고 비판했다.

일례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 12권에서 천상에서 지복(至福)을 얻은 영혼들이 주기적으로 다시 세상으로 떨어지고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는 플라톤의 환생이론을 극렬히 비판한 바 있다. 기독교 신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 오직 한 번 뿐이기에 삶을 신앙과 윤리로 정의롭고 아름답게 가꿔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일깨우려 한다.

환생을 주된 설정으로 삼아 또 다른 삶의 기회, 더 나은 삶의 기회에 대한 상상을 펼치고 이로써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는 장르 소설의 대중적 인기는 기독교적 인간 이해보다 불교의 통속적 윤회 사상에 더 익숙한 한국인들의 종교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종교성의 뒤쪽에는 현실에서 감내해야 할 난관과 책임을 진지하게 유념하고 싶어하지 않는 나약한 심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른바 ‘이번 생은 망했다’는 생각이 환생 이야기의 인기를 견인한다. 이는 기독교 문화가 뿌리내린 서구의 판타지, 장르 소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정서이다. 현재 한국 장르문학을 넘어 대중문화계 전반에서 인기 서사 공식으로 자리 잡은 환생 이야기는 지금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함부로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해버리는 자기 혐오의 심정을 은연중에 부추긴다는 점에서 신학적으로든 실존적으로든 기형화된 인간 이해의 한 유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박욱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수학했고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좁은문은혜교회 목사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와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리=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