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100년 발걸음, 사회 개혁·민주화·한반도 평화 꽃 피웠다

입력 2024-09-01 15:18 수정 2024-09-02 13:25
NCCK가 1995년 10월 31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5.18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특별기도회를 마치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고 있다. NCCK 제공


한국교회 최초의 연합기관이자 한국사회 인권운동의 시초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총무 김종생 목사)가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았다. NCCK는 100년간 에큐메니컬(교회 일치와 연합) 운동을 기본으로 한국사회 불의·불법·부정에 기독교 가치를 바탕으로 저항했고 민주화·노동·여성·통일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용공 논쟁과 시민사회단체에 역할 이양, 전 세계적인 보수화 바람 등으로 NCCK의 크기와 영향력은 축소했다. 이에 따라 NCCK는 에큐메니컬 지도력 향상과 다음세대와 접점 마련 등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NCCK 100주년 기념 엠블럼.


NCCK는 1924년 9월 24일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 이름으로 창립됐다. 당시 한국 개신교의 주류였던 장로교와 감리회 연합을 목적으로 시작됐으며 ‘복음선전’ ‘사회 도덕의 향상’ ‘기독교 문화의 보급’ 등을 목표로 세웠다. 32년 발표한 ‘사회 신조’는 인권보장, 민중차별금지, 아동 노동금지, 여성 교육, 공창폐지 등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사회 개혁과 실천 방안을 담아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한국기독교연합회로 재건됐으며 한때 5·16 쿠데타를 지지했으나 70년 NCCK로 이름을 바꾼 직후에는 삼선개헌을 반대하는 등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한 뒤 인권위원회(현 NCCK 인권센터)를 조직한 NCCK는 반고문·반폭력 인간선언대회 개최, 국가보안법 폐지 및 민족통일협의기구 구성 촉구,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명단 공개 운동 등을 펼쳤다. 특히 민청학련 구속자들을 위한 기도회로 시작한 목요기도회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혁당 희생자 가족 등 국가폭력과 유신독재에 맞선 이들을 보호했다.

손승호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사무국장은 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70년대에 접어들어 NCCK는 교회의 이익을 위한 협의회 성격에서 벗어나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으며 특히 인권위원회는 당시 폐허와 다름없던 한국사회에서 인권 운동을 견인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초창기 인권위원회는 민주화를 보호하기 위한 시민권에만 관심을 두면서 민중의 생존권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추후 NCCK가 노동자 인권에 이어 환경 운동까지 시작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 다양한 인권운동을 발현시키는 시대적 사명을 완수했다”고 분석했다.

NCCK가 2005년 5월 23일부터 이틀간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6.15 공동선언 이행과 평화통일을 위한 금강산 기도회 및 성가제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NCCK 제공


이후 NCCK는 통일운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86년 9월 스위스에서 NCCK 대표와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가 분단 이후 최초로 만났다. 2년 뒤에는 ‘88선언’으로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 채택됐다. 88선언에는 남북 분단 상황에 일조한 교회의 죄책을 고백하고 희년을 선포하며 7·4 공동성명(1972년)을 지지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으며 이는 6·15 공동선언(2000년) 등 정부 통일정책의 근간이 됐다. 89년 문익환 목사, 92년 권호경 NCCK 총무가 김일성을 면담하는 등 활발한 교류가 이어졌고 부활절과 광복절에 남북공동기도문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최근 남북 관계가 경색되며 그 명맥이 끊겼다.

2000년대 들어 NCCK가 해왔던 다양한 운동은 종교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전문 시민사회단체로 옮겨갔고 활발히 활동하던 지도자들 역시 빠져나갔다. 또 동성애와 종교다원주의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한국교회 보수연합기관이 힘을 얻으면서 활동이 과거보다 축소됐으나 세월호 및 할로윈 참사 유가족 위로, 기후 위기 극복 등 정의·평화·통일·일치 운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NCCK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유튜브 프로그램 '미잡쑈' 공개방송을 지난달 서울 강남구 한 공연장에서 진행하고 있다. NCCK 제공


김상근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NCCK 100년 역사는 교회사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민주화의 역사요 인권 운동과 남북 냉전 시대 극복의 역사”라며 “과거에도 에큐메니컬 운동이 쉽지 않았으나 그 어려움을 이겨냈듯이 교회 지도자들과 젊은 목회자들이 현 상황에 맞서 싸워 돌파해나갈 의무가 있다”고 격려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