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식 단 한쪽엔 태극기, 다른 편에는 성조기가 걸려 있었다. 국회의장과 국가보훈부장관, 광복회장은 근조화환을 보냈다. 추모식 현수막 맨 위엔 그의 인생을 간추린 한 글귀가 보였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박사님은 누구보다 조선과 한국을 사랑하셨습니다. 한글 자강운동의 선구자로서 주시경 선생과 함께 한글을 연구하며 쉼표 마침표 점찍기 등을 도입하셨습니다. 또 개인의 영달과 이해관계를 떠나 순수한 인간애와 정의를 바탕으로 대한독립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그분의 삶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집니다.”(우원식 국회의장)
“박사님은 고종황제의 외교 특사로 1905년 워싱턴, 1907년 헤이그에 파견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세계만방에 알리셨습니다. 선교사로 조선에 오신 박사님은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조국보다 우리나라를 더 위하셨던 박사님의 헌신을 미래세대에 계승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전종호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사님께선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의 해방을 ‘정의와 인도주주의의 승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한국의 독립은 나의 조국이 독립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기뻐하셨습니다. 75주기를 맞이해 대한의 자주독립과 박사님의 인류애를 되새겨 봅니다. 박사님이 몹시도 그리운 날입니다.”(이종찬 광복회장)
30일 서울 마포구 100주년기념교회 선교기념관.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항일운동에 나섰던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에 대한 추모사가 대독·낭독됐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가 주최한 이날 추모대회엔 교계와 정·관계 관계자 300여명이 참석했다.
대회사를 전한 김동진 회장은 헐버트기념회 발기인 대표 명단을 꺼내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헐버트 박사께서 살아계셨을 1949년 1월 윤보선 전 대통령과 백낙준 유진오 박사 등 대표 50명이 헐버트기념회를 만들고 ‘헐버트에 대한 감사는 민족 최대의 의무’라며 ‘그의 공훈을 자손만대에 알려야 한다’고 요청했다. 안중근 의사 역시 ‘한국인이라면 헐버트를 하루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며 “그런데 선진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헐버트 박사님을 아는 국민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위정자들부터 헐버트 박사의 업적을 바로 알아야 한다”며 “선열들이 선언한 헐버트 박사에 대한 은혜를 잊지 말자”고 요청했다.
1863년 미국 버몬트주에서 태어난 헐버트 박사는 23세였던 1886년 내한해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힘썼다. 일제의 만행을 알리다가 1907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에서 추방당한 뒤엔 미주 독립운동가들을 도우면서 조선 독립을 지지했다.
헐버트 박사는 1949년 7월 29일 광복절을 앞두고 국빈으로 대한민국에 초청됐으나, 다음 주인 8월 5일 별세했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생전 요청에 따라 그의 묘소는 서울 마포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마련됐다.
글·사진=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