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8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하나 올렸다. 그는 2014년 8월 재선 대통령 시절 황갈색(tan) 정장을 입은 자신의 사진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같은 색깔의 정장을 입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썼다. “이렇게 시작됐는데,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멋있다!(How it started. How it’s going. Ten years later, and it’s still a good look!)” 조회수는 무려 6600만회를 상회했다.
정치의 세계에서 ‘황갈색’은 통상적으로 피해야 하는 색깔이다. 짙은 회색이나 감색 양복에 비교해 가볍게 보이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10년 전인 2014년 8월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에 대해 브리핑하면서 황갈색 정장을 입었다. 브리핑 내용보다는 오바마가 입은 양복색을 두고 어마어마한 논쟁이 일었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외교 안보 사안의 심각성에 맞지 않는다며 “대통령답지 않다”고 비판이 쏟아졌다. “파티를 가는 것이냐”는 조롱도 쏟아졌다. 일부 언론에서는 ‘황갈색 수트게이트’라고 불렀고, 백악관은 “오바마는 그냥 그 수트를 좋아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오바마도 비판에 주눅 들지 않고 황갈색 수트를 유머로 활용했다. 오바마는 2017년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오늘 황갈색 정장을 입고 싶다는 유혹을 많이 받았다는 말로 시작하겠다”고 말하면서 좌중에서 폭소가 터졌다. 그러면서 “하지만 나보다 패션 감각이 조금 더 뛰어난 미셸 (아내)가 1월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바마의 황갈색 정장은 인터넷에서 ‘밈(유행 콘텐츠)’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황갈색 정장이 재밌고 멋진 이미지로 비치면서 예전의 논쟁이 지나치게 진지했다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도 대선 후보로 지명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인 전당대회에서 황갈색 정장을 당당하게 입고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해리스가 전당대회 첫날 황갈색 정장을 선택한 것은 빨강·흰색·파랑의 전통적인 색상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해리스 부통령이 황갈색을 선택한 것을 두고 진보 진영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오바마의 지지층에 어필하는 한편, 황갈색에 과민 반응하는 보수 진영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