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가 쏟아졌다”…‘딥페 피해 학교’ 명단 직접 만든 여고생

입력 2024-08-29 00:02

‘딥페이크’ 성범죄가 중·고등학교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위험성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건 엑스(X·옛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확산한 피해 학교 명단을 통해서다.

초기에 일부 특정 지역 학교 등의 피해 의심 사례 중심으로 기재됐던 이 명단은 한 엑스 계정에서 제보를 받기 시작하며 광범위하게 업데이트됐다. 이 계정 주는 다름 아닌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이었다.

A양은 28일 국민일보와 메신저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지난 25일 처음 엑스에서 피해가 의심되는 지역과 학교가 기재된 명단을 발견하고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꼈다”면서 제보 계정을 운영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A양은 처음엔 자신이 사는 지역 내 학교도 피해가 있을 것 같아 추적을 시작했다고 했다. 텔레그램 내 채널 검색 지원 서비스인 ‘telemetrio’를 통해 학교 이름과 키워드를 검색했다. 익숙한 경기도 소재 중·고등학교 이름을 사용하는 ‘겹지인방’(지역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참가자들이 서로 아는 지인들의 불법 합성물을 제작 및 공유하는 대화방)이 나왔다.

A양은 곧바로 평소 사용하던 본인의 엑스 계정에 이를 공유했다. 그런데 게시물을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 A양에게 “우리 학교도 피해를 보았는데, 학교 이름을 추가해 주실 수 있느냐”는 내용의 다이렉트 메시지(DM)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A양은 “처음에는 직접 찾은 학교 이름만 올리고, 따로 제보 계정을 운영할 생각은 없었는데, 외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제보가 들어오면서 책임감이 들어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루도 안 돼 제보 224건… 책임감 들어 확인 시작”

A양은 지난 25일 오후 11시쯤 처음 명단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튿날 오후 7시 기준 224건의 제보를 받았다. 이후로도 40여건의 제보가 추가로 이어졌다. A양은 늦은 새벽까지 방대한 분량의 제보를 확인하고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

A양이 본인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게시한 제보의 일부. A양 엑스 캡처

제보가 많아지면서 허위 제보도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양은 잘못된 사실이 퍼지지 않게 하려고 증거가 될만한 사진이 있거나, 텔레그램 방의 제목 또는 대화 내용 등이 함께 제보된 경우만 따로 분류하는 등 확인 절차를 만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80여개에 달하는 피해 의심 학교를 확인했다.

제보자 중에는 본인이 직접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를 본 이도 있었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학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대화방도 있었다고 한다.

A양은 가해자와 관련해 특정 인물의 신상 정보나 가해자로 의심할만한 증거 등 제보도 함께 들어오고 있지만, 무분별한 신상 공개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신상이 포함된 게시물도 올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 명단을 공유해달라거나, 제보자를 연결해달라는 요청도 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칭 계정·지인 능욕방·초등생 협박까지…끝 모를 가해 수법

이런 가운데 지난 27일엔 엑스에 A양의 계정과 같은 프로필 사진에 닉네임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사칭 계정도 등장했다. 사칭 계정은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척 접근해 개인정보를 탈취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 A양도 이 때문에 “피해 학교를 제보하기 전 꼭 본 계정이 맞는지 확인하길 바란다”는 공지를 올렸다.

A양이 본인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게시한 제보의 일부. 딥페이크 피해 외에 '지인 능욕방' 등 다양한 가해 수법이 제보로 들어오고 있다. A양 엑스 캡처

딥페이크 성범죄뿐 아니라 텔레그램에서 지인의 개인정보를 팔아 더 높은 수위의 텔레그램 방에 들어가는 일명 ‘지인 능욕방’ 등의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제보에 따르면 해당 대화방 참여자들은 지인의 이름과 전화번호, 거주지, 학교, SNS 아이디(ID) 등을 사진과 함께 전송한다. 이후 운영자의 승인을 받으면 별도 대화방에 입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A양에게 연락한 제보자는 “확인된 것만 500명 이상의 신상 정보가 유출되었으며,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의 신상까지 공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지금 이순간도 고통…엄중 처벌 되길”

더 이상의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명단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A양은 하루빨리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 가해자는 마땅한 처벌을 받고, 다신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고도 호소했다.

그는 “(가해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감형이나 선처가 이루어져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흐지부지 넘어갈 것이 아니라, 관련 법안이 마련되어 가해자 모두가 꼭 엄중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특히 “피해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고, 피해자가 아닌 사람도 명단에 오른 학교에 재학 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언제 범죄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A양은 항후 피해자들이 도움을 요청한다면 모아온 증거물들을 공유하겠다고 전했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