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점수를 높이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접수했다고 인증한 학부모들이 등장해 논란이다. 전문가들은 응시 인원이 적은 탐구과목의 경우 수십명의 학부모가 참여해 저득점자를 늘릴 경우 성적 향상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수능 선택과목 제도의 허점을 일부 학부모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교묘히 이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28일 한 입시 관련 카페에는 “4교시만 수능 원서 접수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고3 자녀를 둔 학부모라고 밝힌 작성자는 필수과목인 한국사와 화학1, 생명과학1을 선택한 응시원서 사진을 첨부했다. 이 학부모는 “같이 수능 보기로 한 엄마들이 당뇨 있다고 배신 때려서 혼자 씩씩하게 다녀왔다”며 “우리 아이들 화1, 생1 표준점수는 엄마가 지켜줄 거야”라고 했다.
다른 학부모도 “화생러(화학, 생물 응시하는 수험생) 아이 위해 접수했다”며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결제 내역을 인증했다.
누리꾼들은 이같은 학부모가 ‘극성’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수능 응시생이 수십만명에 이르는 만큼 실질적 영향은 없을 것으로 봤다. “그런다고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싶다” “깔아주면 수험생이야 고맙겠지” 등의 댓글이 달렸다.
그러나 응시인원이 수천명에 불과한 일부 탐구 과목의 경우 이같은 ‘깔아주기’를 통한 점수 향상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특히 상대평가로 점수를 매기는 표준점수의 경우 그 영향이 클 수 있다.
표준점수는 과목별 난이도를 반영한 점수다. 평균점수가 낮으면 시험이 어렵다고 판단, 고득점자의 표준점수는 높아진다. 예를 들어 지난해 지구과학1 만점자의 표준점수는 68점이었으나 화학2 만점자의 표준점수는 80점이었다. 동일한 1등급이지만 표준점수는 12점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처럼 자녀와 동일한 탐구 과목에 응시하는 학부모들은 평균점수를 낮춰 자녀의 표준점수를 높이는 전략을 유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자녀의 의대 진학을 노리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이같은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상위권 학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과학탐구2는 응시자가 매우 적어 응시자 증감에 따른 표준점수 변동폭이 크다. 지난해 가장 응시인원이 적었던 과탐 과목인 화학2는 4460명의 수험생만이 응시했다. 다른 과탐2 과목의 응시인원도 4726~6818명에 불과했다. 일부 학부모들의 작당으로 평균 점수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학부모들이 깔아주면 일부 탐구 과목에서는 표준점수가 다른 과목보다 20~30점 높아질 수 있다”라며 “수치상으로는 몇 십명이서 대한민국을 갖고 놀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탐구과목에 따른 유불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학부모들의 수능 응시를 막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탈 행위를 하는 일부 학부모가 있을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통계에 영향을 줄 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