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친엄마가 아니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라.”
장례를 치르는 동안 이틀째 계속 울고 있는 중학생에게 아버지는 위로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학생의 어머니는 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학생은 “어머니가 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죽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그가 폐인이 되는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 소설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내용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이런 비극의 주인공은 PC방에서 폐인으로 살다가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온라인 중독 치유 사역자로, 부산 하나로교회 담임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문해룡(51) 목사다.
문 목사는 아버지 첩에게 태어난 장손이었다. 그를 기르신 어머니는 딸 하나 외에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조강지처였다. 아버지는 사별한 지 3개월 만에 새 엄마를 들였고 3년 동안 3번이나 새장가를 갔다. 그런 아버지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문 목사가 고2때 아버지는 간암으로 눈을 뜬 채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는 철저히 혼자가 됐으며 ‘더 이상 부모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겠구나’라는 위험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문 목사는 늘 도전보다 포기가 앞섰다. 좋지 못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생겨난 패배주의 성향 때문이었다. 그는 “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찌질이야”라는 자괴감을 뛰어 넘을 수 없었다. 징병검사때 키가 160㎝ 미만이면 면제였는데 그는 154㎝. 난쟁이 수치로 나왔다. 스스로 장애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패배주의에 찌들어 있던 시절과 폐인생활을 하며 우울증이 왔을 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엄마처럼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문 목사는 고2때 친구가 예쁜 여자가 많다는 말에 교회수련회에 처음 참석했다. 그의 눈에는 모두가 대단해 보였다. 노래, 운동, 기타, 드럼, 피아노 못하는 게 없어 보였고 너무 멋있었다. 그러나 문 목사는 소외감과 열등감 그리고 부끄러움 많은 루저였다.
1996년 수능을 넉 달 앞둔 여름. 문 목사는 빵과 베지밀로 사흘을 버티며 게임에만 몰입했다. PC 앞에서 사흘 만에 마우스를 쥔 채 졸다가 결국 앉은 채로 실신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게임만 하다가 교회를 갔다. 일주일 동안 겨우 30분 잤다. 스물세 살의 젊은 피였기에 버틸 수 있었다. 게임에 빠져 스스로 망쳐버린 결과 모의고사 성적은 20점이나 떨어졌다. 그는 수능 후 방황하기 시작했고 그의 모습은 아버지와 똑같았다. 밤이면 혼자서 술을 마셔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하나님과 이모 같은 집사님, 교회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그가 목회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오로지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문 목사는 남아공 선교를 다녀온 뒤 5개월 동안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잠이 오면 자고 눈 뜨면 게임만 했다. 문 목사는 게임을 더 열심히 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만큼은 부모가 없는 게 편했다.
빚이 2000만원 됐으나 그는 밤새워 게임을 했다. 당시 그의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였다. 그는 죽어도 울어줄 사람이 없고 불구가 돼도 그로 인해 고통 받을 사람이 없었기에 목숨을 담보로 액셀레이터를 끝까지 당겼다. 당시 그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문 목사는 신학을 하고서야 어둠의 긴 터널을 뚫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아내 문지나(42) 사모를 만나 교제 2주 만에 결혼을 약속했다. 늘 춥고 잔인했던 12월이었지만 결혼으로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아내는 나의 ‘에제르’(히브리어로 ‘돕는 배필’)다. 키 작고 능력 없고 부모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와 빚뿐인 나에게 시집을 왔다. 그리고 알토란같은 아이 5명을 낳아 주었다”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문 목사는 다섯 자녀 모두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매년 전국 어린이 암송대회를 빠지지 않고 참가하게 했다. 첫째 딸은 4년 연속 대상을 받았고, 아이들은 수학 하나만은 놓치지 않았다. 가정에서는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려고 애쓰며 아침마다 등교하기 바쁜 아이들을 붙잡아 안수기도를 했다.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다.
문 목사는 2015년 게임중독에 빠진 부모들에게 필요한 사역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온힐(온라인중독힐링센터) 선교회를 설립했는데 상담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상담결과 부모의 영성, 부부의 관계, 자녀의 양육문제였다. 그리고 상담하러 왔다가 프로 게이머가 된 경우도 있었다”며 “이 사역이 성공할 줄 알았는데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온힐 선교회를 접고 안식년으로 쉬면서 고신대 기독상담학과를 이수해 우울증과 갱년기를 치료했다. 문 목사는 스스로 목숨을 거두신 어머니의 장례를 다시 치렀고 35년 이상 무의식중 낮은 자존감의 원인이었던 키 작은 콤플렉스를 끊어냈다. 그는 완전 회복된 2022년 헤아림 자녀영성선교회를 출범시켰다. 여기는 온라인 중독 문화를 능력 있는 거룩한 자녀로 양육하는 연구하고 전수를 하는 곳이다. 온라인 중독상담, 가정 상담, 부부 부모상담, 프로게이머 양성, 영재 양육법 공개 등으로 펼쳐지는 국내선교 사역이다.
문 목사는 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딸들아 23살쯤 엄마처럼 시집가렴.” 그의 마지막 소망은 “25명 손주들의 할아버지 목사가 되는 것이다. 노년엔 손주 스물다섯 명과 배틀그라운드, 스타그래프트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