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에 ‘임보’된 동경이, 소들이 보인 뭉클한 반응 [개st하우스]

입력 2024-08-24 00:02 수정 2024-08-24 00:02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가족이 운영하는 축사에 유기견을 데려왔어요. 집주인에게 허락을 구해보고 지인들을 수소문했지만 임시보호할 공간을 못 구했거든요. 덩치가 수십 배는 큰 소들 사이에 녀석을 두고 첫날밤에는 걱정이 돼서 밤잠까지 설쳤어요. 새벽에 가서 살펴보니 소들이 녀석에게 먼저 다가와서 송아지 돌보듯 핥아주고 얼굴을 비벼줬어요.”
-세종시 구조자 김소리(39)씨

지난 7일 이른 오전, 세종시 외곽의 작은 농촌 마을. 설익은 푸른 벼가 넘실대는 들판의 끝단에 제보자 소리씨의 가족이 운영하는 200평 남짓한 축사가 있습니다. 축사 안에 들어서자 선풍기 수십 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가운데 덩치가 자동차만 한 소 70여 마리가 누런 볏짚을 질겅질겅 씹고 있습니다. “멍멍!” 그 때 축사 어디에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들은 일제히 되새김질을 멈추더니 복도를 바라봅니다. ‘꽃순이’ 등장입니다. 축사의 귀염둥이가 아침 산책에 나선 겁니다.

꽃순이는 15㎏ 남짓한 토종 견종 동경이로, 토끼를 연상케 하는 특유의 뭉툭한 꼬리가 특징이죠. 녀석은 토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축사 이곳저곳을 누비더니 넉살 좋게도 소들이 먹던 여물과 물을 먹습니다. 마리당 몸무게가 800㎏쯤 된다는 소들은 그런 꽃순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른 팔뚝만 한 혓바닥으로 꽃순이를 핥기 시작합니다. 새끼라도 돌보는 것처럼 얼굴이며 엉덩이를 정성껏 핥아줍니다.

축사에서 지내는 동경이 견종, 꽃순이 모습. 전병준 기자

꽃순이는 지난겨울 소리씨에 의해 이웃 밭에서 구조된 강아지입니다. 구조는 됐지만 그렇다고 꽃순이가 유기견이었던 건 아닙니다. 견주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견주는 꽃순이를 야외에 묶어둔 채 추위와 굶주림에 방치했더랬죠. 소리씨가 나서서 구조한 뒤 지금은 축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소리씨는 “꽃순이가 이제는 안전한 가정에서 더 큰 사랑을 받도록 입양자를 찾아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남의 땅에 묶어두고 잠적…"딱한 방치견을 구조했어요"

세종시에 신혼집을 꾸린 제보자 소리씨는 지난해 12월 이웃집 밭에 방치된 강아지를 발견합니다. 생후 6개월도 안 된 퍼피였죠. 꽃순이는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서 1m 남짓한 쇠줄에 묶인 채 빈 밭에 맥없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돌보는 이가 없는지 물그릇은 얼어붙고 사료 그릇도 텅 빈 상태. 그 와중에도 사람이 반갑다며 발랑 누워 배를 드러내는 녀석을 소리씨는 두고 볼 수 없었어요. 그날부터 소리씨는 녀석을 꽃순이라고 부르며 챙겨주기 시작합니다. 추위에 견디도록 옷을 입히고, 이웃들과 당번을 정해 매일 물과 사료를 챙겨줬죠.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마당개 키우는 게 흔한 시골이라지만 비바람 피할 집도 없이 개를 방치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게다가 밭 주인도 꽃순이의 견주가 아니었습니다. 대체 누가 꽃순이에게 이렇게 못된 짓을 한 걸까요.

마을 공터에 방치된 꽃순이를 제보자가 발견할 당시 모습. 제보자 제공

일주일 뒤, 꽃순이를 챙기던 소리씨에게 다가온 50대 남성 김모씨. 꽃순이의 견주였습니다. 그는 타인의 사유지에 꽃순이를 방치한 속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김씨는 일감을 찾아 타지를 떠도는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두달쯤 전 3개월령 퍼피를 얻어왔지만 월세방을 전전하는 처지에 돌볼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감을 구해 타지로 나갈 때면 빈 땅에 개를 며칠씩 묶어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챙겨주겠거니 하고 말입니다.

주민들은 무책임한 김씨를 경찰과 지자체에 신고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국내법상 물리적 학대의 증거가 없는 경우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는 행위만으로 소유주를 처벌하기는 어렵습니다. 신고는 반복됐지만 갈등만 커질 뿐 가엾은 꽃순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민들과 김씨 사이 갈등만 커졌습니다.

하지만 소리씨는 김씨를 비난하는 것보다 시급한 게 꽃순이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시도합니다. 소유권자와 좋은 관계를 형성해 소유권을 넘겨받는 거였죠. 소리씨는 모두가 손가락질하던 견주를 감싸줬습니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견주의 불우한 처지에 공감해주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며 “동시에 꽃순이를 넘겨주면 더 좋은 보호자에게 입양 보내겠다고 달랬다”고 말합니다.

소리씨의 중재로 꽃순이의 처지는 점점 나아졌습니다. 소리씨는 밭 주인을 설득해 꽃순이를 보호할 개집을 설치하고, 불안정한 견주를 대신해 사료를 챙겼습니다. 그 정성이 통한 걸까요. 올해 3월이 되자 견주는 소유권 포기 각서에 서명하고, 꽃순이를 소리씨에게 넘겼습니다. 이제 꽃순이는 소리씨의 품에서 보호받으며 입양처를 찾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갈 곳 없어 축사에…유기견 만나자 소들이 보인 반응

가까스로 구조했지만 고민은 남았습니다. 꽃순이를 보호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리씨가 거주하는 전세아파트는 집주인 반대로 임시보호가 불가능했고, 주변 지인들도 꽃순이를 맡을 형편이 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소리씨가 떠올린 곳이 사촌이 운영하는 축사였습니다.

사실 소리씨는 꽃순이를 축사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덩치가 수십 배 큰 소들과 지내다가 다치지는 않을지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리씨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결국 꽃순이는 축사 귀퉁이 3평 남짓 견사에서 지내게 됩니다.

꽃순이를 축사에 재운 다음날 새벽. 걱정으로 밤을 지새 소리씨가 축사에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소리씨가 본 건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꽃순이가 아침 산책을 하듯 축사를 가로지르자 소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습니다. 특히 암소들은 마치 송아지를 핥듯 커다란 혀로 꽃순이를 구석구석 핥아줬습니다. 축사를 한 바퀴 돌고 온 꽃순이는 목욕이라도 한 것마냥 침으로 온몸이 흥건해졌습니다.

제보자는 구조한 꽃순이를 사촌이 운영하는 축사로 데려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꽃순이는 축사의 소들과 잘 지냈다. 제보자 제공

그렇게 꽃순이는 이곳 소들의 친구가 됐습니다. 소뿐만이 아닙니다. 성격이 순했던 꽃순이는 축사 주변에서 쥐들을 잡던 길고양이들과도 친해졌습니다. 소리씨는 그런 꽃순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습니다. 소리씨는 꽃순이가 실내견으로 살기를 바랐거든요. 소리씨는 “꽃순이가 축사에서 지낸 지 어느덧 5개월”이라며 “이곳에서 친구를 많이 사귀었지만 이젠 꽃순이를 오롯이 사랑해줄 따뜻한 가족을 찾아주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산책 교육도 척척, 영리한 꽃순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지난 7일 개st하우스 팀은 꽃순이를 만나러 세종시 축사를 찾아갔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꽃순이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4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동행했습니다.

견사로 다가가자 꽃순이가 벌떡 일어나 취재진을 반겼습니다. 사람 손길이 그리웠는지 머리며 엉덩이를 들이밀더군요. 꽃순이는 생각보다 깔끔한 성격이었습니다. 산책 줄을 채우니 견사에서 먼 야외에서 배변을 해결했습니다. 목이 말랐는지 꽃순이가 축사에 설치된 대형 물통에 매달리자 그 주위로 소들이 다가오더니 몸 구석구석을 핥아주며 반겨줬습니다. 녀석은 내친김에 소들이 먹는 볏단까지 씹어먹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다만 꽃순이는 산책할 때면 성격이 급해 인솔자를 질질 끌고 다녔습니다. 미애쌤은 해법으로 인솔자와 걸음을 맞추는 산책법을 제시했습니다. 꽃순이가 줄을 끌지 않도록 제어하고, 대신 보호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동행할 때마다 간식으로 칭찬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앞걸음과 뒷걸음을 번갈아 반복하기를 30분쯤 하자 드디어 꽃순이는 인솔자와 걸음을 맞추며 차분히 산책했습니다. 미애쌤은 “반려견에 끌려다니지 않고 보호자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를 제시하는 것이 산책 교육의 핵심”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구조자가 꽃순이와 함께 산책 교육을 받고 있다. 인솔자가 반려견에게 끌려 다니지 않고, 원하는 속도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병준 기자

영리한 동경이 꽃순이의 입양자를 모집합니다.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길 바랍니다.


✔소들의 사랑을 받는 순둥이, 1살 꽃순이 가족을 모집합니다
-천연기념물 경주 동경이 견종
-13개월령 / 17kg /암컷 (중성화X)
-사람 손길을 반기고 산책을 즐김. 고양이, 소 등 다른 동물과 친화력이 강함.

✔꽃순이의 가족이 되어줄 분은 아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https://form.naver.com/response/6IM9L9cBASSQWJzW0eyvqA

✔꽃순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41번째 견공입니다 (102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