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끼 부족한 청년, 44만 쉬었는데…‘끈’ 자원한 이들

입력 2024-08-22 16:28 수정 2024-08-22 16:46
게티이미지뱅크

“대학 졸업까지 딱 한 학기 남았을 때였어요. 발등에 불은 떨어진 것 같았지만 막상 뭐부터 해야 할지 감이 전혀 안 잡혔어요. 하고 싶은 일이 없었거든요.”

기성호(33)씨는 자존감이 가장 낮았던 시기로 2018년 스물일곱 그때를 떠올렸다. 꿈을 구체화하러 1년 반 미국까지 다녀온 터였지만 하고 싶은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현역으로 원하는 대학에 들어왔는데도 앞으로 뭘 하면서 먹고살지 막막했다”며 “졸업한 뒤에도 한동안 그냥 쉬었다”고 했다.


당시 기씨 같은 청년들은 경제활동인구에서 ‘쉬었음’ 인구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처럼 일을 하지도, 찾지도 않는 청년들이 근래 부쩍 늘고 있다. 22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살펴보면 ‘쉬었음’ 청년(15~29세)은 지난달 44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7월 중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때(44만1000명)보다도 많은 수(44만3000명)다. 청년층 ‘쉬었음’ 인구는 고령층(60세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 견줘 가장 많았다.

또 다른 문제는 청년들의 일할 의지도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통계청 고용동향 마이크로데이터로 청년층 ‘쉬었음’ 인구를 들여다보면, “일하기를 원했냐”는 질문에 응답자 4명 중 3명(75.6%)은 구직 의사도 없다고 답했다. 구직 의사가 있는데도 쉬고 있는 나머지 청년층은 ‘원하는 임금 수준이나 근로조건이 맞는 일거리가 없을 것 같아서’ ‘교육·기술 경험이 부족해서’ 쉬고 있다고 했다.

윤성화(오른쪽 세 번째) 멘토링연구소 소장이 지난 5월 서울 마포구의 멘토링연구소에서 크리스천 진로수업인 '비전스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멘토링연구소 제공

기씨가 ‘쉬었음’ 통계에서 빠져나온 시기는 2019년. 캠퍼스 선교단체 지인의 소개로 기독 청년 진로교육단체에서 ‘비전스쿨’ 강의를 수강한 뒤다. 그는 “윤성화멘토링연구소에서 지난 20대 경험들을 기록하면서 내가 뭘 잘하는지 또 앞으로 뭘 해야 할 지 찾아갔다”며 “비전에 맞는 직군을 하나씩 좁혀가면서 지원할 회사를 물색했다”고 했다. 2019년 말 기업 20곳에 첫 지원서를 낸 그는 K건설에 합격해 현재 대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지방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 하는 일에 매우 만족한다”며 “경력을 쌓은 뒤 훗날 창업 계획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 활동 의지를 상실한 청년세대에 비전과 역량을 불어넣는 믿음의 단체는 또 있다. 경영 컨설팅 기업 가인지캠퍼스는 ‘청년 일터학교’ ‘비전 프로그램’ ‘취업 콘퍼런스’ 사업으로 청년들의 근로 의욕을 뒷받침하고 있다. 청년들에게 일터 선교사의 비전을 심어주고 크리스천 선배들과의 일대일 코칭을 지원하는 식이다. 회사는 한동대를 비롯해 한국대학생선교회(CCC)와 협력 관계이기도 하다. 정우현 본부장은 “기독 청년이라면 프로그램 참여에 제한이 없다”며 “작은 교회 청년부에서도 멘토링 요청이 온다면 얼마든지 협력하겠다”고 전했다.

가인지캠퍼스가 마련한 기독 청년 취업 콘퍼런스 현장. 가인지캠퍼스 제공

청년 취업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교회들도 적지 않다. 서울 오륜교회(주경훈 목사)는 지난 6월 2박3일간 경기도 가평 필그림하우스에서 ‘크리스천 취업스쿨’을 진행했다. 올해로 9번째인 취업스쿨은 청년들이 특기와 적성을 발견하는 강의로 시작된다. 강사는 기업 인사팀 등에서 현업으로 일하고 있는 교회 집사들이다. 청년들은 합숙 기간동안 강사 피드백을 반영해 자기소개서를 완성하고 강사진 앞에서 모의 면접을 보기도 한다.

서울 왕성교회(길요나 목사)는 지난 4월 교회 어린이집을 청년들을 위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연면적 350㎡에 달하는 청년센터W엔 스터디카페를 비롯해 취업 지원을 위한 AI면접실, 세미나실 같은 시설이 들어섰다. 이 교회 청년부 사역자인 윤요한 목사는 “청년 1인 가구가 많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공간을 전환했다”며 “시설은 전액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의 걸음이 늘었는데 청년들이 수강할 각종 자기개발 원데이 클래스를 다음 달부터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오륜교회 청년들이 교회 크리스천 취업스쿨에서 모의 면접을 보고 있다. 오륜교회 제공

현금 지원으로 청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교회 사역도 눈길을 끈다. 서울 본교회(조영진 목사)는 교회 청년들에게 방학마다 자기개발비를 지원하고 있다.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비전을 발견할 수 있도록 밀어주자는 취지다. 자기개발비는 자격증 취득은 물론 여행 등 취미생활에 쓰인다. 대구 명덕교회(반성은 목사)는 한 성도의 후원으로 청년들에게 취업 격려금을 전한 적이 있다.

이밖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는 매년 한세대와 취업박람회를 열어 청년들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 삼일교회(송태근 목사)는 교회 안팎의 전문가들을 강사로 내세워 청년들에게 무료 취업 컨설팅을 연계하고 있다.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