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레옹’의 주인공인 살인청부업자 레옹은 쪽잠을 자며 깊은 수면을 거부한다. 잠든 동안 가해질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의 ‘생계형 불면증’이 사라진 건 자신이 구한 이웃집 소녀 마틸다를 신뢰하면서부터다.
성경에도 생명의 위협을 경계하며 잠을 청해야 하는 인물이 나온다. 왕위 찬탈을 노리는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는 다윗 왕이다. 그는 “여호와여 내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라면서도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고 말한다.(시 3:1,5) 목숨을 노리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숙면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레옹에게 마틸다가 있었다면 그보다 극한 상황에 놓였던 다윗에겐 여호와가 있었다.
영국 성공회 목사인 저자가 쓴 이 책도 ‘불면증 완화에 도움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룬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으면 얻을수록 더 곤히 잠들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그러면서 제목 그대로 하나님이 할 수 없는 12가지 행위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전면 부정하는 게 도대체 인간의 꿀잠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저자는 다윗의 사례를 들어 이 둘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그가 단잠에 든 건 “그 어떤 용감하고 충직한 부하보다 더 강하고 든든한 이가 자신을 눈동자처럼 지켜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잠들지 않은 채 사주 경계하며 자신을 지키는 하나님 덕분에 수월히 잠들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주무시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때 인간은 매일 밤 평안히 잠들 수 있다. 결국 책이 다루는 내용은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하나님의 위대함인 셈이다.
저자가 제시한 ‘하나님이 할 수 없는 12가지 목록’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완전한 지식을 갖췄기에 배우거나 마음을 바꿀 수 없다. 그분께 예상외의 일이란 없기에 외부의 변수로 놀라거나 새롭게 변화를 겪는 일도 불가능하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고통과 죽음, 외로움을 겪지 않는다. 절대선 그 자체이기에 악에 시험을 받거나 거짓말을 할 수 없다. 누군가의 후손이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한 ‘필연적 존재’이므로 자기를 부인하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
성경에서 언급한 이들 내용만 봐도 하나님은 인간과 확연히 다른, 온전히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존재다.(사 40:25) 저자는 그렇기에 인간이 그분께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다고 힘줘 말한다. “(인간과 달리) 시간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은 시간이 태동할 때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금 이 순간 다 알고 있다.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을 포함해 모두 다 안다는 것이다.… 놀랄 수 없는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것이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세상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비결이다.”
저자가 꼽은 12가지 일을 하나님은 정말 할 수 없을까.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지만(시 121:3~4)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탄 배에서 풍랑 속에서도 잠든 적이 있다.(막 4:38) 모든 걸 아는 그분은 배울 필요가 없지만(사 44:7) 예수는 성장 과정에서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눅 2:52) 하나님은 영원하고 보이지 않는 속성을 지닌 존재이지만(딤전 1:17) 성육신해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딤전 3:16)
저자는 이런 반례를 ‘은혜의 선택’이라 불렀다. 하나님이 불가능한 일을 실행한 건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본인의 의지대로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불안과 걱정으로 잠들지 못한다면 이젠 숫자를 헤아리는 대신 하나님의 실체를 떠올려 볼 일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