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취학부터 초등학생까지 서너 명의 아이들이 카페에서 키오스크를 사용해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직접 골랐다. 주문부터 신용카드 결제까지, 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작은 손가락이 화면을 터치할 때마다 호기심과 약간의 긴장감이 얼굴에 번졌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백석대학교 부속 ABA센터(소장 홍이레 교수)의 2차 여름방학 특별 프로그램 마지막 날 풍경이다.
이날 아이들은 지하철을 타고 방배역을 오가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이런 활동은 아이들이 일상에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상황을 미리 경험하고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됐다. 단순히 교실에서의 학습을 넘어 실생활에서의 적용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백석ABA센터는 ‘응용행동분석’(ABA, Applied Behavior Analysis)을 통해 아이들의 행동 발달을 돕는 기관이다. ABA는 인간의 행동을 사회적으로 유의미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행동심리학의 한 분야로,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19일 국민일보와 만난 홍이레 백석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이 학교 내의 도서관, 카페, 편의점, 인근 지하철 등을 이용하며 실제 생활 경험을 쌓는 것이 사회 적응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며 “이러한 현장 체험 활동을 맘껏 할 수 있다는 점은 백석ABA센터가 가진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발달장애 아동들은 종종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체험을 통해 아이들의 사회적 기술을 발전시키고, 자립적인 생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석ABA센터는 올해 초 개설된 이래,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을 기치로 발달장애 아동들에게 수준 높은 ABA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ABA는 서울 시내에만 70개 이상의 센터가 운영될 정도로 주목받는 분야지만, 높은 비용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평균적으로 ABA 치료의 비용은 시간당 15만원에 달하지만, 백석ABA센터는 이를 절반 이하로 낮춰 시간당 6만원에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 백석대가 가진 기독교적 사랑과 이웃에 대한 배려에서 비롯했다. 홍 교수는 “우리 센터는 이 가격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차상위계층에게도 무료로 프로그램을 제공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며 “더 많은 아동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백석ABA센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부속 응용행동분석 교육 기관”이라며 “이곳에서 교육받는 모든 아이가 세상에 나가 유연하게 적응하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센터 소속 교수와 스태프들이 최선을 다해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백석ABA센터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뛰어난 교수진과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다. 소장인 홍 교수는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자폐와 ABA를 전공했으며, BCBA(국제 응용행동분석 자격증)를 보유한 전문가다. 연구위원인 이영지 교수는 뉴질랜드 오클랜드대에서 자폐를 전공했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인 ‘트리플 P(Triple P)’ 중 장애부모를 위한 SSTP 자격증을 한국인 최초로 취득했다.
센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에게 효과적인 ABA 치료를 통해 아동들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도록 돕고 있다. 아동들의 인지 발달을 돕기 위해 치료실 문을 다양한 색으로 구성하고,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구를 준비하는 등 아동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아동들의 치료뿐 아니라 지친 부모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부모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상담 세션과 교육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들이 자녀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방법을 전수하는 자리다. 또한, 부모-자녀 간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한 가족 참여 활동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백석ABA센터는 8월 한 달 동안 무료 상담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홍 교수는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고민이 있는 부모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이번 무료 상담을 마련했다”며 “백석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님들과 슈퍼바이저들이 직접 상담을 진행하며 아동 발달이나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에게 유익한 조언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