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통일교 간부 “아베 피살, 교단 천벌받았다 생각”

입력 2024-08-22 00:02 수정 2024-08-22 00:02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저격한 뒤 달아나려는 총격범을 붙잡는 경호원들. 연합뉴스

한국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본부가 호화 성전 건축을 위해 일본 교단으로부터 식민지배 속죄 명목의 송금을 계속해서 요구해 왔다고 주요 내부 관계자가 폭로했다. 그는 통일교가 일본 선거에서 많은 자민당 의원이 당선되도록 도왔다고도 밝혔다.

오에 마스오 전 일본 통일교단 홍보부장은 20일 공개된 주간문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격을 당하고 그 배경에 통일교에 대한 원한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교단에 천벌이 내려졌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22년 7월 8일 나라시에서 같은 자민당 후보의 선거 유세를 돕기 위해 거리 연설을 하던 중 야마가미 데쓰야(당시 41세)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데쓰야는 어머니가 몸담은 통일교를 원망해 교단과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한 아베를 노렸다고 진술했다. 그의 어머니는 통일교에 모두 1억엔을 헌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에 전 부장은 “1억엔이 넘는다는 야마가미 데쓰야 어머니의 헌금은 본인 재산이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에 속한다”며 “하지만 그 때문에 개인 파산에 이르고 가족이 길거리를 헤맨다면 교단은 받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앙의 자유에는 ‘공서양속(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약과 책임이 따른다”며 “현재 교단 간부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많은 돈을 모으는 것밖에 머리에 없다”고 비판했다.

‘폭로 출간’ 앞두고 “교단 망치려느냐”
히타 쓰요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는 이날 통일교단 내 비화를 담은 책 ‘참회록’을 출간했다. 그 주요 내용이 오에 전 부장의 입에서 나왔다. 1992년 통일교 홍보 담당을 맡은 그는 이듬해부터 99년까지 홍보부장을 지냈다. 통일교가 68년 창립한 사회단체 ‘국제승공연합’과 한일터널 사업을 추진하는 국제고속도로재단에도 간여한 바 있다고 한다. 주간문춘은 “교단 책임 인원으로도 이름을 올린 적 있는 고참 신자”라고 부연했다.

통일교단 내 비화를 담은 책 ‘옛 통일교회 오에 마스오 전 홍보부장 참회록’ 표지. 아마존

오에 전 부장은 통일교에서 영감상법(靈感商法·종교적 믿음을 이용한 상술)과 고액 헌금이 시작된 경위, 아사히신문사 연쇄 테러인 일명 ‘적보대(세키호타이) 사건’과 교단의 관계, 자민당과 교단 간 오랜 교류 등을 책에서 밝혔다.

교단 본부에서는 출간을 막기 위해 교회개혁추진본부장을 비롯해 여러 명이 오에 전 부장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들은 “내부 사정을 폭로하다니 당신은 교단을 망치려는 거냐”고 말했다고 오에 전 부장은 전했다.

그는 얼마 전 찾아온 교회개혁추진본부장에게 “고액 헌금을 전면 금지하고 엄격한 컴플라이언스 선언을 하라”고 충고한 뒤 돌려보냈다고 했다. 당시는 1억엔 넘는 헌금을 한 고령 신자가 ‘반환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작성한 서약서가 대법원에서 무효로 판결되기 직전이었다.

“일 교단 간부들, 한국 본부의 예스맨”
오에 전 부장은 통일교회를 잘못된 길로 이끈 ‘악의 근원’이 영감상법과 고액 헌금이라고 지목했다. 일본 교단은 75년 문선명 총재가 찾아와 “경제 활동에 관심을 가지라”고 한 뒤 본격적인 경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전까지는 개척 전도가 중심이었다.

오에 전 부장은 “도자기나 도장에 영적인 힘이 있다며 법을 벗어난 가격을 붙이고 판매 매뉴얼을 만들어 조직적인 영감상법으로 확대해 나갔다”며 “최악의 사기 행위(インチキ商法)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홍보부장이던 시절 교단 안에서는 “영감상법은 잘못됐다”고 말하면서 외부에는 “통일교회는 영감상법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공식 입장을 계속 내놨다고 했다. 당시 교단을 그만두지 않고 판매를 도운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그는 말했다. 오에 전 부장은 이번 출간 전 교단을 탈퇴했다.

한학자 총재 조각상. 현대종교 제공

통일교가 고액 헌금에 의존하기 시작한 건 경찰 단속으로 영감상법이 어려워지면서였다고 오에 전 부장은 설명했다.

그는 고액 헌금을 사실상 금지한 대법원 판결에도 일본 교단 회장이 그만두지 않고 교단도 변하려 하지 않았다며 “일본 간부들은 한국 본부의 예스맨들뿐”이라고 꼬집었다.

“통일교, 많은 자민당 의원 선거 도왔다”
그는 아베 전 총리 피살 사건 후 통일교와 무관한 듯 선을 그은 자민당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가 그토록 많은 자민당 의원의 선거를 돕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아베 전 총리 사건을 계기로 교단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자민당은) 일제히 태도를 바꿔 모르는 척했다”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여론에 휩쓸려 종교법인 해산명령을 청구했다며 “자신들만 빠져나가려 한다”고 불평했다.

통일교가 자민당을 지지한 것은 헌법 개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자민당을 주축으로 한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개헌 논의를 이어왔다. 개헌은 여러 내용을 아우르지만 그중에서도 자위권을 헌법에 명시하면서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군대로서 그 역할을 강화·확장한다는 점 때문에 국내외에서 강한 우려와 반대에 부딪혀 왔다.

통일교와 국제승공연합의 목적은 헌법 조문에 ‘나라를 사랑하는 의무’를 담는 것이었다고 오에 전 부장은 말했다.

개헌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정치인이 아베 신조 전 총리였다. 오에 전 부장의 설명으로 보면 통일교는 이런 아베 전 총리에 기대를 걸고 자민당을 도왔던 것으로 보인다.

오에 전 부장은 “자민당은 자주헌법 제정을 당시(정당의 기본방침으로) 내걸면서 (실제로) 할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며 “자신들이 당선되면 좋은 것이지 나라를 사랑한다는 마음 따위는 없다”고 실망스러움을 드러냈다. 이어 “유일하게 아베 신조만이 진지하게 개헌을 하려고 했다”며 “그래서 우리도 진심으로 응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 헌금, 호화신전 건축·도박자금으로”
한국 교단의 송금 요구가 고액 헌금 배경에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일본 교단은) 75년부터 한국 본부에 막대한 돈을 보내왔다”며 “우리는 큰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경기 가평의 통일교 기념박물관 '천정궁'. 가평=이제원 기자

일본 교단이 한국에 돈을 보내게 된 데는 ‘40년의 탕감복귀’라는 지침이 있다.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한국 통감에 취임한 1905년부터 종전으로 식민지 지배가 끝날 때까지 걸린 40년과 동일한 기간 동안 ‘한국에 대한 속죄’로 돈을 보내라는 가르침이다.

오에 전 부장은 “이 속죄는 2015년 끝나야 했지만 송금 요청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가 하면, 2대 교주인 한학자 총재(문선명의 아내)가 호화로운 신전을 잇달아 짓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교단이 한국에 보낸 돈이 한 총재 등의 도박 자금으로도 쓰인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한국 교단 본부는 도박이 세계 경제를 배우기 위해 필요한 경험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 설명은 충분하지 않고 홍보 전략으로서도 매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신자들은 이런 일을 위해 지금도 고액 헌금을 강요받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런 문제에 대해 질의서를 받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특정 정치인 등을 조직적으로 지원하는 일은 없다. 헌금이 유흥비로 사용되는 일은 결코 없다”고 답변했다고 주간문춘은 전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