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고 도주한 40대가 재판에 넘겨졌다. 경찰은 이 남성이 운전하기 전 술을 마시는 CCTV 영상을 확보했지만 끝내 음주운전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제주지검은 20일 제주지법 형사1단독(재판장 여경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 겸 결심 공판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상)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A씨(41)에 대해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A씨는 지난달 10일 오후 6시39분쯤 제주 한라산 성판악 탐방안내소 근처 516도로에서 서귀포 방면으로 지인 소유의 쏘나타 차량을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낸 혐의를 받는다.
A씨는 승용차 3대를 잇달아 들이받은 뒤 도주하다가 또다시 중앙선을 침범해 마주 오던 간선버스를 들이받고 달아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버스 승객 등 3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A씨는 2018년 면허가 취소돼 무면허 상태였다.
A씨는 이후 경찰이 출동하기 전 차량을 버린 뒤 인근 수풀 속으로 도주했다. 다음 날 오전 8시20분쯤 경찰이 제주 양지공원 인근에서 그를 긴급체포하고 음주측정을 진행했지만, 이미 사고 시점으로부터 13시간40분이 지난 뒤였다.
A씨는 최초 경찰 조사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후 “사고 당일 점심 때 식당에서 반주로 소주 4∼5잔을 마셨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도 해당 식당 CCTV를 분석해 A씨가 여러 차례 술을 마신 영상을 확보했다.
그러나 결국 A씨는 음주운전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현행법상 음주운전으로 형사처벌하기 위해서는 운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이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A씨의 경우 그를 검거해 음주 측정을 했을 때 혈중알코올농도가 0%로 나왔다. 시간 경과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역산하는 ‘위드마크 공식’도 있지만, 이조차도 역추산의 기준으로 삼을 ‘최초 수치’가 필요해 이 같은 경우 적용이 어렵다.
A씨가 음주 사고 이후 벌인 일은 트로트 가수 김호중의 행적과 상당히 유사하다. 김호중도 지난 5월 술을 마신 뒤 차를 몰다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후 곧바로 도주한 뒤 17시간 만에 경찰에 출석해 음주 측정을 받았고, 경찰 조사에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발뺌하다 열흘이 지나서야 음주운전 사실을 시인했다. 이 과정에서 김호중 소속사 관계자는 방송 인터뷰에서 “술잔을 입에 댔을 뿐 술을 마신 건 아니다” 등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A씨는 공판에서 “피해자분들께 사죄드린다. 현재 합의를 못 하는 처지인데, 나가면 2∼3년 안에 합의하겠다”며 “기회를 주시면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의 변호인도 “피해를 회복해주고 싶으나 본인은 구속 상태고 가족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풀려나는 대로 피해 회복에 나서겠다고 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선고 공판은 다음 달 열릴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