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길바닥 신부’라 부르며 한평생 생명과 평화, 정의의 길을 걸어온 문규현 신부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에 있는 ‘파자마 출판사는 1989년 문 신부가 임수경씨와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8월15일을 기해 ‘너 어디 있느냐 - 사제 문규현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엔 하느님의 부르심에 망설이지 않고 답하며 ‘오롯함과 바름’으로 사제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고 그 다짐대로 걸어온 문 신부의 팔십 평생 삶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책은 5부로 구성됐다. 1부는 사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2부는 사제가 된 문규현의 모습을, 3부는 평양에 있던 임수경과 함께 분단의 벽을 넘는 과정을 다뤘다. 또 4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삼보일배와 오체투지를 하는 고난의 시간을, 5부는 문 신부가 살아온 삶의 의미에 대해 정리했다.
글쓴이들(문상붕, 이정관, 장진규, 형은수)은 전북지역에서 30년 넘게 국어를 가르쳐온 교사들이다. 20여 년 전부터 문 신부와 ‘청소년 뚜버기’ 활동을 하며 함께 길을 걷고 얘기를 나누며 생각과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최근 은퇴한 이들은 문 신부의 삶을 기록하고, 고난의 길을 찾아 걸어왔던 그의 삶에서 인간의 품위를 찾아내고자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치열하게 행동하면서도 꾸준히 기록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은 문 신부의 자료 덕분에 집필하기가 그나마 수월했다고 한다. 하지만 1TB(테라바이트) 하드디스크를 꽉 채운 방대한 자료를 일일이 찾아보고 정리하는 데 많은 밤을 지새워야 했다. 종이 자료만 80㎏이 넘어 초고를 완성하는 데 만 16개월이 걸렸다. 집필과 교정에만 들인 시간도 총 2200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글쓴이들은 “자칭 ‘길바닥 신부’라고 부르는 문규현 신부에 대해 객관적으로 담백하고 간결하게 쓰고자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마음과 영성에 끌려 들어갔다”고 밝힌다. 이 책은 오늘의 고통을 은총으로 바꾸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실천으로 바꾸는 한 사제의 뜨거운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1945년 1월 1일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문 신부는 자신을 ‘해방둥이’가 아니라 ‘분단둥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휴대전화 뒷자리 번호가 ‘0815’이다.
그는 완주 고산성당, 부안성당, 전주 서학동성당, 평화동성당 등 전북 곳곳에서 주임신부로 있으면서 생명들을 쓰다듬고 평화를 꿈꿨다.
사제로서 그의 평생 기도는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어떻게 만드느냐”였다. 1989년 미국에서 유학중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결정에 따라 북한을 방문,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씨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6개월간 감옥살이를 했지만 이후 통일로 향하는 길이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문 신부는 2009년 용산 참사 비극에 유족의 슬픔과 함께하려 단식하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2003년 부안에서 광화문까지 이름도 없는 뭇 생명을 살리기 위해 65일간 삼보일배로 기어서 갔다. 또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참회와 성찰을 요구하며 126일동안 오체투지로 엎드려 기도하며 갔다.
문 신부는 항상 낮은 자리에 함께 하며 생명과 평화의 길을 걸었지만 불의에 대해서만큼은 ‘깡패 신부’이기도 했다.
전 봉은사 주지인 명진 스님은 추천사에서 “넘어진 자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이, 눈물 흘리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이, 약자들에 대한 연민으로 함께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바로 보살이고 부처님일 것이다”며 “힘없는 이들에 대한 한없는 연민으로 걸어오신 참 종교인, 문규현 신부님! 이 한 권의 책은 고통에서 희망으로 건너가는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라고 적었다.
글쓴이들은 “통일이 멀어지고, 생명이 죽어가는 시대에 통일과 생명의 소중함을 우리 또한 느끼고 함께 하기 위한 책이자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품위 있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