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도에서 전해 온 전도 이야기(10) 목사보다 영치금 20만원을 더 기다린 그 형제가…

입력 2024-08-20 11:41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그동안 돌보며 교도소에 면회를 갔던 형제가 얼마 후면 출소합니다. 출소 날이 다가와서 그런지 면회를 가면 그는 눈이 빠지도록 저를 기다립니다. 그는 제가 가서 전하는 권면의 말씀과 기도를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사실은 영치금 20만원이 기다림의 목적입니다. 본인 이야기로는 교도소 안에서 같은 동료들에게 수없이 얻어먹고 보답하지 못해서 늘 미안하고 심지어 왕따를 당하는 일들로 힘들어 20만원이 생기는 날이면 그나마 체면이 선다고 합니다.

한번은 비가 많이 오던 추운 겨울 진주교도소에 면회 갔던 일이 있습니다. 밖에 있을 때는 머리에 염색도 하고 키 190㎝에 체중이 90㎏이나 나가는 잘생기고 건장한 형제가 머리는 빡빡 깎은 채 빛바랜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게 보였습니다. 나이 예순에 백발로 가슴에는 죄수 번호를 달고 애타게 영치금을 기다리는 모습이란 참으로 비천했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등장하는 거라사 공동묘지에 사는 광인의 모습이 꼭 저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가 살던 집 바닥을 다 뜯어 내고 노후로 새고 있던 수도 호스를 모두 교체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데도 5만원씩 나오던 수도요금이 3000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무덤 같은 고향마을의 허름하고 침침한 집에서 복수심과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소리를 질러대며 울다가 그 울분을 억제하지 못해 집안 유리창을 주먹으로 모두 깨뜨려 손에 피를 철철 흘렸고 그러다 며칠 만에 감옥으로 돌아가는 반복된 삶을 살아갔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분명 5년 전 섬 목회를 꿈꾸며 이곳에 왔을 때 제가 바라고 상상하며 섬겨야 할 순박한 어촌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거라사 지역 주민들이 생각났습니다. 범죄자였던 청년이 나아서 새사람 되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의 능력과 사랑에도 관심을 주지 않은 채, 오히려 이곳을 속히 떠나 달라고 하던 그 장면이 이 형제의 고향 사람들과 많이도 닮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형제에게도 주님의 복된 소식이 들어가 이 사회가 안고 가지 못하는 한 인간, 끝없는 좌절 속에서 괴로워하며 발버둥 치는 불쌍한 한 영혼에게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가 거라사 광인이 변화되었듯이, 이 작은 섬에 세워진 교회를 통해 주님은 그 형제의 손을 이미 잡고 계시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지붕 새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제일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목사님, 돈이 많으신가 봐요" 했고, 그럴 때면 "하나님께 청구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교도소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저는 목사보다 20만원을 더 소중히 여기는 저 형제를 교회의 소중한 한 지체로 여기며 다시는 그를 감옥에 보내지 않고 오네시모처럼 복음을 위해 유익한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차 안에서 운전대를 잡은 제 손등에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형제가 떠난 그의 집을 새롭게 수리하면서 그간 원인 모르는 누수 현상으로 수도 요금이 폭탄처럼 나오는 문제를 시작으로 주인 없는 형제의 집으로 날마다 출근하면서 고장 난 부분들을 고쳤습니다. 또 마당의 잡초도 뽑았습니다. 시골집은 사람이 6개월만 비우면 산처럼 변하기 일쑤였는데 그렇게 3년간 주인 잃은 시골집을 다시 사람 사는 집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제 그 집 주인이 다시 돌아온다는 소식에 동네 주민들은 싸늘한 눈총을 보냈습니다. 자고로 목회자는, 특히 시골 개척교회 목사는 욕도 많이 얻어먹고 오해도 흠뻑 뒤집어써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기에 주민들의 눈총과 비난에도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젠 저를 이해해 주시는 주민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에게도 늘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드렸습니다. 또 그분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CCTV도 기관에 부탁해 설치해 모든 이의 마음을 모아갔습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