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붉은 금식표’…안락사 당일 구조된 블링이 [개st하우스]

입력 2024-08-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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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아산시보호소에서 당일 안락사를 앞둔 블링이를 극적으로 구조했다. 블링이가 지내던 59번 견사에 붙은 빨간 금식표와 블링이의 구조 당시 모습. 최수진 기자

“그날 시보호소 견사에 붙은 금식 안내문이 평소와 달랐어요. 이번에는 빨간색 글씨로 붙어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빨간 금식표는 안락사 예정인 동물에게만 붙이는 거였어요. 관리사 이모님이 그걸 보고 제발 블링이를 구조해달라고 저를 붙잡으셨어요. 이모님 얼굴을 보니 눈물 범벅이더군요. 저도 함께 울다가 결국 구조를 결심했습니다.”
-블링이 구조자 현정민(40)씨

유기동물로 떠돌다 구조돼서 보호소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수많은 강아지들. 한동안 끼니는 맘편히 챙겨 먹을 수 있지만 죽음을 앞둔 강아지는 사료도 물도 먹지 못합니다. 금식을 하지 않은 채 마취를 하게 되면 토사물이 올라와 강아지가 세상을 떠날 때 고통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안락사를 앞둔 강아지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보호소는 왜 살리기 위해 구조한 유기동물을 안락사시키는 걸까요. 슬프지만 안락사는 보호소의 현실입니다. 시보호소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구조 신고가 들어온 유기동물을 보호조치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입소하는 유기동물이 한두 마리가 아니라는 거죠. 구조는 끊임없이 이뤄지고, 보호소는 항상 포화상태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보호소가 새로운 동물을 위해 안락사라는 잔혹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1살 추정의 암컷 믹스견 ‘블링이’도 안락사 위험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블링이는 임시보호 신청 한번 없이 시보호소에서 두 번째 여름을 맞이하게 됐거든요. 결국 블링이는 ‘정리 대상 개체’로 지정됐고, 7월 11일로 안락사 예정일까지 정해졌어요. 여기까지 진행된 동물이 살아남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블링이는 살아남았습니다. 지켜보던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블링이는 그날 어떻게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났을까요.

“제발 구조해주세요“ 보호소에 울려 퍼진 관리사의 절규

블링이가 사람의 손에 흥미를 보이고 다가오고 있다. 최수진 기자

지난해 8월 충남 아산시보호소에 입소한 블링이는 애교가 많은 강아지였습니다. 보호소 안의 좁은 견사에서 1년을 보내면서 사람을 볼 때마다 꼬리치며 반기곤 했죠. 블링이가 특히 따른 건 매일 밥과 물을 챙겨준 관리사 이모님이었습니다. 이모님은 아침저녁으로 블링이에게 인사를 하고, 잠들기 전까지 블링이를 보살폈습니다.

하지만 둘의 애틋한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었습니다. 지난달 11일 여느 때처럼 블링이를 보살피러 견사에 들어간 이모님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블링이가 있는 59번 견사 문 앞에 빨간색으로 ‘금식’이라고 쓰여 있는 안내문을 발견하고 만 거죠. 중성화 수술을 할 때도 금식 안내문은 종종 붙었지만, 붉은 글씨의 의미는 달랐습니다. 오늘 안락사가 이뤄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시보호소에서 블링이가 봉사자의 손에 관심을 보이며 장난을 치고 있다. 아산 동물보호연대 제공

절망한 이모님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습니다. 보호소는 안락사를 앞둔 블링이의 식기를 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모님은 매일 밥을 주던 녀석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차마 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이모님은 견사 복도를 걸어오던 봉사자 현정민씨를 발견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곧장 정민씨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은 이모님은 59번 견사에 있는 강아지를 구조해달라고 애타게 외쳤습니다. 영문을 모르던 정민씨는 견사를 확인해보겠다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블링이를 발견하게 됐죠. 정민씨는 “이모님이 방진복을 입고 있어서 얼굴에 땀이 흐른 줄 알았는데 아침부터 흘린 눈물이 얼굴을 뒤덮은 거였다”며 “들어가보니 블링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데 차마 모른 척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정민씨는 이날 안락사 명단에 올랐던 강아지 ‘이슬이’를 구조하기 위해 시보호소에 왔습니다. 하지만 이모님의 절규와 눈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애교를 부리는 블링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죠. 결국 정민씨는 함께 동물 구조 활동을 하는 단체 아산동물보호연대 강지영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민씨는 “무리인 걸 알면서도 대표님께 한 마리만 더 구조해도 될지 물어봤다”며 “대표님도 블링이를 데려오라 말씀해주신 덕분에 극적으로 구조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안락사 당일 아침,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벗어난 유기견

구조 당일 블링이의 극적인 탈출을 본 관리사 이모님이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현정민씨 제공

블링이는 안락사 당일 급하게 구조됐습니다. 예정된 구조가 아니어서 이동장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죠. 정민씨는 가지고 있던 담요로 블링이의 몸을 감싸 보호소를 나왔습니다. 블링이를 구조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건 이모님이었습니다. 정민씨와 이모님은 서로를 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모님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정민씨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모님은 견사를 빠져나온 블링이를 연신 쓰다듬었습니다. 이모님은 “시에서 블링이의 밥그릇과 물그릇을 빼라고 하는데 도무지 뺄 수가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날 안락사를 준비하고 있던 수의사 원장님도 구조 소식에 블링이를 찾았습니다. 원장님은 수의사로 동물을 살리기 위해 일하면서도 안락사를 시행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씁쓸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블링이의 구조를 두고 천운이라고 표현한 이유죠.
안락사 당일 블링이를 구조한 현정민씨가 동물보호연대 입양센터에서 블링이를 쓰다듬고 있다. 최민석 기자

블링이는 이슬이와 함께 아산동물보호연대의 입양센터로 이동했습니다. 한순간에 생사가 갈린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애교를 부리는 블링이는 센터에서 평생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물보호연대 강 대표는 “시보호소에는 안락사 대상 개체로 지정된 강아지들이 너무 많지만 봉사자는 적어서 모든 강아지를 구조하기는 역부족”이라면서도 “이모님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블링이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름처럼 빛나는 삶을 함께 해 줄, 블링이의 평생 가족을 기다립니다

이슬이가 입양적합도를 확인하기 위해 입양센터를 찾은 미애쌤과 윤이쌤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고 있다. 최민석 기자

개st하우스팀은 지난달 18일 블링이와 이슬이를 만나기 위해 동물보호연대를 찾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초면부터 배를 보이며 애교를 부리는 이슬이와 달리, 블링이는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어요. 사실 블링이는 이리저리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데 낯선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 보니 겁을 먹은 모습이더군요.

블링이와 이슬이는 모두 1년간 보호소에서 생활했습니다. 사람 손길을 좋아하고 간식도 받아먹지만 아직 겁이 조금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날 행동전문가 윤이쌤과 미애쌤이 블링이와 이슬이의 입양적합도를 알아보기 위해 동행했습니다.
행동전문가 윤이쌤이 낯선 공간에서 겁을 먹는 블링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압박법을 소개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블링이는 호기심이 많지만 장소가 바뀔 때 두려움을 느끼는 강아지였습니다. 윤이쌤은 “이런 상황에서는 두 팔을 이용해 흉부 쪽을 살짝 압박하며 달래주는 진정법이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옷이나 붕대 등으로 압박감을 주면서 불안감을 낮춰준다면 블링이의 환경 적응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이슬이는 사회성이 정말 좋은 강아지였습니다. 다만 사람의 손에 대해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손을 뻗었을 때 뒷걸음질을 치거나 숨는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이슬이는 손에 대한 긍정적인 기억을 심어주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미애쌤은 “이슬이가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훈련을 진행하면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슬이와 블링이의 모습. 최수진 기자

안락사를 앞두고 구조된 블링이와 이슬이의 평생 가족을 모집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설명을 확인해주세요.

■안락사를 앞두고 기적처럼 구조된, 블링이와 이슬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블링이
-1살 추정 믹스
-암컷, 7kg
-낯을 가리는 편
-예방접종 완료 / 중성화 예정

▶이슬이
-3살 추정 믹스
-암컷,10kg
-역대급 애교쟁이 (현재 임보중)
-예방접종 완료 / 중성화 예정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카카오톡 채널로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아산동물보호연대 https://pf.kakao.com/_rqYxiK

■블링이와 이슬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39, 140번째 견공입니다 (102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최수진 기자 orc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