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환승길에서 찾은 20년차 선교사의 ‘기막힌 사명’

입력 2024-08-14 10:00 수정 2024-08-14 16:34
이여호수아 선교사가 13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노숙인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이달 평균 인천공항 일일 이용객은 22만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8만명)에 비해 22% 증가한 수치다. 13일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여행객들로 빈 의자를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노숙인 밥 한 끼를 챙기는 이여호수아(71) 선교사를 만났다.

오후 2시30분이 되자 이 선교사는 선교단체 NCMN(대표 김미진) 산하 5K운동 봉사자들이 건넨 도시락을 받아 공항 안 노숙인을 찾기 시작했다. 5K운동은 내 주변 5㎞ 반경의 이웃에게 구제 교육 보건 등 사역을 진행하는 운동이다.

축구장 50개 크기(38만㎡)의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서 노숙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공항 의자에서 잠을 청하는 여행객이 많았을 뿐 아니라 여행객에 섞여 노숙인을 구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2여객터미널을 40분쯤 걸어 다니며 5명의 노숙인을 만날 수 있었다.

여행객들이 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중 한 명인 김하늘(가명·29)씨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이곳에 와 머물렀다. 외동아들이었던 김씨는 음주운전 차량에 부모님을 잃었다. 김씨는 처벌을 받겠다는 음주 운전자에게 1원의 합의금도 받지 못했고 그에게는 부모님 장례를 치르는 데 필요한 장례비용만 남게 됐다. 부모님을 잃고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던 김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내던 월세방에서도 쫓겨났다. 이런 김씨에게 이 선교사는 매일 끼니를 물어봐 주는 유일한 말동무가 됐다.

A국에서 20년간 사역하던 이 선교사가 한국 환승길에서 마주한 것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노숙인이었다. 이 선교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선교지로 가는 길이 막혔고 우선 한국에서 이들 한 끼를 책임지는 사역을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시작한 사역은 4년이 됐다. 사비를 들여 이들을 돕기 시작한 이 선교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며 “부족할 때마다 기막힌 방법으로 채워주신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이 선교사를 돕는 개인과 단체가 공항 내 10명 내외 노숙인의 매일 한 끼를 지원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제2여객터미널 교통센터부터 제1여객터미널 교통센터까지 이동시간을 포함해 2시간 30분 동안 노숙인을 찾아다니며 도시락을 전달했다. 이 선교사의 진심은 노숙인들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로 이어졌다.

김씨는 우울증을 이겨내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며 “여기 있는 동안 불편함 없이 지냈다. 용기를 내 새롭게 도전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 선교사는 “그들에게 식사 안부를 물으며 복음을 묻혀 드리는 것”이라며 “내 끼니를 나눠 이웃의 한 끼를 살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