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M은 중학교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말부터 잠이 늘어가고 의욕을 잃으면서 우울증에 빠졌다. 약물치료를 하면서 우울함이 나아지고 공부도 열심히 해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1년여 동안 공부를 쉬어서인지 성적이 잘 오르지 않자 크게 실망했다. 무기력해져 게임에만 몰입하게 되었다.
공부한 것에 대해 원하는 성적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이게 강화요인이 되어 더욱 의욕적으로 열심히 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노력이 늘 원하는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M은 이때 좌절해 주저앉아 버린 거다.
이럴 때 이렇게 질문해 보면 어떨까? 마침 올림픽 사격 김예지 선수가 화젯거리이다. “두 개의 스토리가 있어. 올림픽에서 한 선수는 최선을 다한 다음 금메달을 차지했어, 또 다른 선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 누가 성공한 걸까” 대답은 물론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 많은 아이는 “금메달을 딴 사람이 성공한 거죠. 금메달을 따지 못한 건 결과적으로 정한 목표에서 실패한 거죠” 다른 아이는 “최선을 다했으니 둘 다 성공한 거죠”라고 말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사람은 “글쎄요.....”라고 할 것이다.
M은 세 번째에 해당했다. 하지만 세 가지 유형 중 어떤 경우이든 ‘성공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성공을 다른 식으로 정의한다면 어떨까? 결과에 집중하는 대신, 우리의 가치에 맞추어 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위의 예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도전 정신’을 잃지 않았다는 가치에 초점을 맞춘다면 메달을 따지 못한 두 번째도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결과와 성취만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이런 식의 사고 전환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 강요해도 안 된다.
단지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조금 유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물꼬를 터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메달이라는 결과는 눈에 보이고 누구나 인정해 주고, 확인이 가능하지만, ‘도전 정신’ 등의 의미는 막연하고 추상적이라고 느끼기 쉽다.
하지만 인간은 빵 만으로만 살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고 지금 당장 손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먼 미래, 무형의 가치가 삶에 의미를 주고 이것이 동기 유발의 원동력이 된다. 이런 ‘의미’ ‘꿈’ 등을 상상하고 이것을 향해 갈 때 권태감, 무기력감에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억만장자가 되거나, 세계적인 스타가 된 어떤 사람이 처음엔 성취의 기쁨이 취해 있지만, 나중에는 허무함, 무기력에 빠져 약물이나 술에 취해 생을 마감하는 스토리’를 자주 보게 되지 않나? 외형적 성공이 가치를 향한 방향을 잃을 때 생기는 일이다.
자아의 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러 척도 가운데 중요한 것이 좌절을 얼마나 이겨낼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노력의 결과가 바로 긍정적으로 주어지면 좋겠지만, 우리와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좌절은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다. 이 좌절을 어떻게 견디어내는 지가 궁극적인 삶에서의 성공을 결정할 것이다. 단기적인 목표를 잘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고 이를 어떻게 이루어 낼지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그 너머의 꿈은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좌절을 겪었을 때도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