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이은혜 품은 양아버지 “화이팅도 겨우하던 소녀”

입력 2024-08-12 14:22 수정 2024-08-12 16:10
한국 탁구 대표팀 선수 이은혜(가운데)가 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이은혜의 양아버지인 이충희 목사가 제공한 사진이다.

16년 만에 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메달을 선물한 3인방 중 한 명인 이은혜가 귀화해 한국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데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품으며 입양을 결심한 가정이 있었다.

이은혜는 중국에서 한국에 정착한 선수 중 거의 유일하게 입양을 통해 귀화했다. 대부분은 성인이 돼 귀화 절차를 밟지만, 이은혜는 미성년 시절 입양을 통해 한국인이 된 것. 88서울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 선교사가 몽골에서 성경 번역 선교사인 남편과 함께 이은혜를 발탁했고, 소녀의 간절한 한국행 바람이 한 가정에 전달되면서였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을 꺾고 승리한 한국팀 신유빈(왼쪽부터), 이은혜, 신유빈, 전지희가 시상대에 올라 환호하고 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은혜 양아버지인 이충희 목사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에서 국제 입양을 통해 귀화하는 첫 사례이다 보니 그 절차가 2년 가까이 걸렸다. 결국 은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최종 입양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당시 중국에서 보낸 공증 서류를 들고 입양 절차와 관련된 기관을 수도 없이 다녔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때가 되면 이루리라(사 60:22)’는 성경 구절을 가슴에 새겼다.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목사는 “당시 내몽골은 중국보다 열악한 상황이었고, 은혜도 한국행을 간절히 원해 바로 진행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 두 번째 경기에 나선 한국의 이은혜가 독일 아네트 카우프만에게 팀의 두 번째 경기를 따낸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목사에게는 이미 딸 둘이 있었다. 입양한 이은혜가 가장 나이가 많아 큰 언니가 됐다. 이 목사가 목회 사역으로 수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이들은 종종 주말을 함께했다. 국내외 시합에서 응원을 하며 만나기도 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엔 이 목사가 경기장을 찾아다니면서 딸을 응원했다.

연구, 교수 일로 현재 미국 LA에서 생활하는 이충희(맨 왼쪽) 목사가올림픽 선수 발탁 무렵 한국을 찾아 맏딸 이은혜(왼쪽 두번째)과 아내, 막내딸과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이 목사 제공

이 목사가 입양을 결심한 데는 영적 스승인 고(故) 옥한흠 목사의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라는 목회 철학의 영향이 컸다. 그가 사랑의교회 부목사로 재직할 당시, 그의 아내는 아동복지기관에서 입양 아동 봉사를 했다. 그는 “사랑의교회의 성도였던 양 선교사로부터 은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나님의 허락하시면 좋은 부모로서 아이를 돕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 목사는 ‘은혜’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 두 번째 경기에 나선 한국의 이은혜가 독일 아네트 카우프만에게 공격을 성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목사는 다른 ‘딸바보’ 아빠처럼 맏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냈다. 이은혜가 심한 몸살 감기로 집에 쉬러 왔을 땐 차가운 수건을 대주며 밤새 간호하기도 했다. 고된 훈련과 시합으로 딸이 힘들어 할때마다 새벽 기도를 하며 목회자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응원했다.

이번 파리올림픽 동메달 결정전도 현장에서 응원한 이 목사는 한때 고된 훈련과 여러 어려운 환경 탓에 우울증과 깊은 절망의 시간을 보낸 딸의 과거를 주마등처럼 회상했다고 한다.

이충희(맨 오른쪽) 목사가 맏딸 이은혜(맨 왼쪽) 시합을 아내, 막내딸과 찾아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이 목사 제공

“은혜는 양영자 선교사님의 제자로서 모든 면에서 오랜 기간 세밀한 지도를 받아 왔습니다. 현재 출석 중인 하나로교회의 헌신 속에서 더 성장했고요. 은혜가 동메달 결정전에도 긴장하는 선수들에게 기도해주고 선한 영향력을 전한 것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원래 ‘화이팅’도 겨우 하는 수줍은 아이였거든요. 은혜는 참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성실하지만 때로 엄격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나 염려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늘 겸손하고 차분한 성격이기도 하죠. 탁구의 실력자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훌륭한 소명자로 성장하기를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유빈, 전지희, 이은혜로 구성된 한국 여자탁구대표팀이 1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아레나 파리 쉬드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을 종합 점수 3-0으로 꺾고 감격의 승리를 거뒀다. 이은혜가 카우프만을 맞아 3-0(11-8 11-9 11-2) 완승을 거뒀다. 한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여자탁구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신유빈, 전지희, 이은혜로 구성된 한국 여자탁구대표팀이 1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아레나 파리 쉬드에서 열린 2024파리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을 종합 점수 3-0으로 꺾고 감격의 승리를 거뒀다. 이은혜가 카우프만을 맞아 3-0(11-8 11-9 11-2) 완승을 거뒀다. 한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여자탁구 단체전 동메달을 따냈다. 파리=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