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올림픽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메달을 선물한 3인방 중 한 명인 이은혜가 귀화해 한국에 둥지를 틀 수 있었데는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품으며 입양을 결심한 가정이 있었다.
이은혜는 중국에서 한국에 정착한 선수 중 거의 유일하게 입양을 통해 귀화했다. 대부분은 성인이 돼 귀화 절차를 밟지만, 이은혜는 미성년 시절 입양을 통해 한국인이 된 것. 88서울올림픽 탁구 여자 복식 금메달리스트인 양영자 선교사가 몽골에서 성경 번역 선교사인 남편과 함께 이은혜를 발탁했고, 소녀의 간절한 한국행 바람이 한 가정에 전달되면서였다.
이은혜 양아버지인 이충희 목사는 1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에서 국제 입양을 통해 귀화하는 첫 사례이다 보니 그 절차가 2년 가까이 걸렸다. 결국 은혜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최종 입양이 결정됐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당시 중국에서 보낸 공증 서류를 들고 입양 절차와 관련된 기관을 수도 없이 다녔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때가 되면 이루리라(사 60:22)’는 성경 구절을 가슴에 새겼다.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이 목사는 “당시 내몽골은 중국보다 열악한 상황이었고, 은혜도 한국행을 간절히 원해 바로 진행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목사에게는 이미 딸 둘이 있었다. 입양한 이은혜가 가장 나이가 많아 큰 언니가 됐다. 이 목사가 목회 사역으로 수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이들은 종종 주말을 함께했다. 국내외 시합에서 응원을 하며 만나기도 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엔 이 목사가 경기장을 찾아다니면서 딸을 응원했다.
이 목사가 입양을 결심한 데는 영적 스승인 고(故) 옥한흠 목사의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이라는 목회 철학의 영향이 컸다. 그가 사랑의교회 부목사로 재직할 당시, 그의 아내는 아동복지기관에서 입양 아동 봉사를 했다. 그는 “사랑의교회의 성도였던 양 선교사로부터 은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나님의 허락하시면 좋은 부모로서 아이를 돕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 목사는 ‘은혜’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었다.
이 목사는 다른 ‘딸바보’ 아빠처럼 맏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냈다. 이은혜가 심한 몸살 감기로 집에 쉬러 왔을 땐 차가운 수건을 대주며 밤새 간호하기도 했다. 고된 훈련과 시합으로 딸이 힘들어 할때마다 새벽 기도를 하며 목회자 아버지로서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응원했다.
이번 파리올림픽 동메달 결정전도 현장에서 응원한 이 목사는 한때 고된 훈련과 여러 어려운 환경 탓에 우울증과 깊은 절망의 시간을 보낸 딸의 과거를 주마등처럼 회상했다고 한다.
“은혜는 양영자 선교사님의 제자로서 모든 면에서 오랜 기간 세밀한 지도를 받아 왔습니다. 현재 출석 중인 하나로교회의 헌신 속에서 더 성장했고요. 은혜가 동메달 결정전에도 긴장하는 선수들에게 기도해주고 선한 영향력을 전한 것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원래 ‘화이팅’도 겨우 하는 수줍은 아이였거든요. 은혜는 참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성실하지만 때로 엄격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나 염려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늘 겸손하고 차분한 성격이기도 하죠. 탁구의 실력자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훌륭한 소명자로 성장하기를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