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들의 외침…교회가 할 일을 찾았다

입력 2024-08-12 14:04 수정 2024-08-12 14:13
탈북청소년학교 학생 등 남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지난 8일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열린 연합캠프에서 둘러앉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통일은 떨어져 있는 가족이 다시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통일이 되면 오빠와 저랑 비슷한 나이인 사촌을 만나고 싶어요.”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개최한 ‘남북청년연합캠프’ 현장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의 소원이다. 여명학교에 다니고 있는 양선회(16)씨에게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묻자 들은 답변이다. 양씨는 “현재 교회를 출석하고 있지는 않지만 북한에서 병을 앓아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촌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는 남북청년연합캠프에 참가한 탈북자대안학교의 졸업생과 재학생 14명을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바라보는 통일의 의미와 한국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교계의 지원에 대해 들어봤다.

탈북청소년학교 학생 등 남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지난 8일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열린 연합캠프에서 서로 대화하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의 바람은
남북분단의 상황이 70여년이 흐른 지금 탈북 청소년·청년들은 통일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대부분 남겨진 가족들을 두고온 고향 땅을 그리워하며 통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하루 빨리 통일이 이뤄지길 원하는 것은 양씨와 같이 ‘보고싶은 가족과의 재회’가 가장 큰 이유였다.

여명학교의 박혜민(가명·18)씨도 “통일이 되면 친한 친구랑 남아있는 가족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모들을 만나고 싶다”며 “내가 생각하는 통일은 평화다. 전쟁없이 다시 만난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정착생활의 빛과 그림자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에 도착한 후 겪는 정착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대부분이 어린 나이에 부모의 선택에 따라 한국에 온 이들은 낯선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처음 경험한 ‘자유’에 대한 감사는 컸다.

10살 때 어머니와 함께 탈북한 김은정(17)씨는 “북한에서는 생존 자체가 어려웠지만,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열차 승무원으로 일했던 이나영(39)씨는 “내가 내 돈으로 마련한 자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했을 때 자유를 만끽했다”며 “북한에서는 보름 이상 걸리는 거리인데 부산에서 서울까지 2시간 반이면 가는 것도 신기했다”고 고백했다.

탈북청소년학교 학생 등 남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지난 8일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열린 연합캠프에서 둘러앉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교회에 대한 따스한 기억
탈북 청소년들은 교회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교회에서 받은 따뜻한 대접과 친절한 대우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그들에게 남아 있었다. 김씨는 “교회를 자주 가지는 않지만, 교회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함과 함께 찬양했던 경험을 기억하며, 교회가 북한 아이들이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한꿈학교 졸업생인 박지연(26)씨는 탈북 과정부터 한국 정착까지 한국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은 경험을 밝혔다. 그는 “선교사님들의 인도와 교회의 보호 아래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며 “이사 온 텅 빈 집에 교회분들이 가전제품도 구비해주고, 중고로 구할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알아봐줬다.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신앙적 도움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탈북 청년들은 “한국에 혼자 정착하면서 외로움과 어려움을 겪었다”며 교회에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2020년에 탈북한 윤성심(29)씨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스스로가 외딴섬에 고립된 기분이었다”며 “교회에서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과 남북의 문화적 차이에 대한 도움을 주고, 남한 청년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나영씨도 “영락교회에서 일대일로 영어 과외를 해주는 ‘NK국제학교’에 참여한 적 있다”며 “탈북청년들은 공부와 취업을 위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 취득과 북한 억양을 교정하는 스피치 교육 등을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탈북청소년학교 학생 등 남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지난 8일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열린 연합캠프에서 일어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제3국 출생 탈북청소년의 비애
현장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 중 북한 출생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대부분이 중국, 러시아 등 제3국에서 출생한 경우였다.

한꿈학교 교목인 윤광식 목사는 “코로나 3년 동안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이 막혔고 북한에서는 당연히 탈북하기 더 어려워졌다”며 “학교를 찾아오는 탈북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탈북자 대안학교에서 제3국 출신과 북한 출신의 비율이 8:2가 됐다”고 설명했다. 윤 목사는 “우리 학교는 40명 중 10명이 북한 출신인데, 그 중 절반은 중국에 팔려가 애기 엄마가 된 경우”라며 “그들은 한국에 와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애도 키우며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제3국 출생 탈북 청소년들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다. 여명학교의 김서영(가명·16)양은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며 “주변에서 정체성에 대한 지도를 받은 적이 없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탈북청소년학교 학생 등 남북한 출신 청소년들이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열린 연합캠프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복음 통한 정체성 회복 절실
탈북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복음을 통한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는 것이 탈북자 대안학교 교장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봉실 남북사랑학교 교장은 “탈북 청소년들은 부모와 국가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며 “교회가 부모와 자녀를 함께 전도하고, 효과적인 복음 전달을 위해 전문가들과 협의해 부모자녀교실과 돌봄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은 “아이들은 국가의 보호와 부모의 사랑이 모두 부재한 상황에서 방치되어 있다”며 “예수님의 사랑만이 이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지 않도록 교회가 영성과 지성을 함께 교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교육하는 기초사회적응교육과 신앙교육을 함께 제공함으로써 탈북 청소년들이 건강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연천=글.사진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