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기온이 36도를 넘어섰던 지난 10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걷자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메인 보행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상가 58곳 중 55곳이 문을 활짝 연 채 냉방기기를 가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개문냉방’ 중인 상점은 화장품이나 신발, 식품, 액세서리 등을 팔고 있었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상점 대부분도 18~23도에 맞춰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홍대 인근 식당의 경우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음식이나 술을 마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에어컨 바람이 식당 외부까지 뿜어져 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인들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냉방기기를 켠 채 문을 열어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명동에서 한국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인 이모(35)씨는 “에너지 소모가 큰 건 알지만 손님을 유치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문을 열어놓고 영업해도 여름철 전기요금은 80만원 전후로 나온다”고 말했다. 큰 부담은 없다는 뜻이다. 12년째 명동에서 가방을 판매하는 김모(52)씨도 “주변에 문을 닫아놓는 상점이 없으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열어둔다”고 전했다.
실제로 상인들은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 전기요금과 달리 상점에서 쓰는 일반용(상업용) 전기요금은 1㎾h당 단가가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문을 열고 장사해도 닫아두는 것에 비해 전기요금이 한 달에 3만~4만원 밖에 더 안 나온다”며 “문을 닫을 경우 손님이 오지 않고, 이게 더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가게를 여는 오전 10시부터 문을 닫는 오후 11시 사이 에어컨은 한 번도 끄지 않고 있다고 한다. 홍대에서 양말을 판매하는 한 상인도 “5평 정도 되는 가게에 여름철 전기세는 20만원 전후로 나온다”며 “전기요금보다는 손님이 줄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에어컨을 켠 채 영업을 하는 이른바 개문냉방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일본에서 여행을 온 이사카(23)씨는 “일본에선 에어컨을 세게 켜지도 않고, 이렇게 문을 열어두는 곳은 없다”며 “한국 번화가는 대부분 문이 열려있어 신기하다”고 말했다.
개문냉방은 전력 낭비의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에어컨을 켜둔 채 문을 열고 영업할 때는 문을 닫을 때보다 전력량이 66% 정도 더 소모된다. 지난 8일 기준 국내 전력 수요는 95.2GW로, 2022년 12월(94.5GW)를 넘어선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에너지 낭비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개문냉방은 불법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단속이나 계도 근거는 없다. 개문냉방 영업 단속은 전력 예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는 상황인 ‘에너지 사용 제한 조치’를 내렸을 때만 가능하다.
정부는 2011년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겪은 뒤 전력 낭비를 막기 위해 개문냉방 단속을 매년 시행해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환기 등 방역 수칙이 중요시되면서 2020년 이후엔 제대로 된 단속을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단속은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가장 최근 계도 조치가 내려진 건 2016년 8월(경고 121건, 과태료 2건)이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산업부 등에서도 특별한 주문이 없어 단속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에너지 절약을 위해 상인들의 자발적 참여 등을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