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형사재판 1심 선고가 오는 10~11월로 예정되면서 법원 안팎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한 상황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법원과 담당 법관을 겨냥한 신상털이식 비난이 가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의 판결이 나올 때마다 법리적 공방이 아니라 판사 개인을 겨냥한 ‘좌표 찍기’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사건을 맡은 법관에 대한 공격은 ‘형사 재판 기피 심화’ 등 사법 시스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 됐다. 법원 차원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판사 개인을 비난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11일 “사람들이 과거엔 ‘어느 법원’이 판결했는지를 봤다면 이제는 ‘어느 판사’가 판결했는지를 얘기한다”며 “법관 개인을 압박해서 재판 과정에서 위축시키려는 시도가 흔해지면서 법관 공격이 일종의 재판 대응 수법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로 잘 알려진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관들은 비난과 위협의 ‘화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온라인상에서 법관을 의도적으로 괴롭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정 법관을 지목해 비난하고 동조를 구하는 ‘좌표 찍기’, 법관의 개인정보나 출신 지역, 과거 경력 등을 공격 수단으로 삼는 ‘신상털기’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이 전 대표를 지지하는 친명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최근 공유된 A부장판사의 탄핵 청원 게시글에는 그의 사진과 함께 법원 근무 이력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A부장판사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지난달 12일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한 수원지법 형사11부 재판장이다.
이런 행태는 법원의 판결을 사법부의 결정으로 보는 게 아니라 판사 개인의 판단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수도권의 한 고위 법관은 “단독부든 합의부든 법이라는 기준에 따라 법원에서 내리는 판단이고, 다만 이를 각 재판부가 나눠서 맡고 있을 뿐”이라며 “이를 판사 개개인의 순수한 판단으로 몰고가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표현 수위와 방식도 거칠어졌다. ‘판레기’(판사+쓰레기), ‘판새’(판사 새X) 등 막말과 욕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선을 넘는 억측도 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2심을 기각·각하한 서울고법 행정7부 재판장 B부장판사에 대해 “대법관 승진 회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고법은 “아무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이라며 “사법부 독립에 대한 국민 신뢰를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라고 반박했다.
판사 ‘좌표찍기’는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법리적 분석보다 자신의 진영에 불리한 판결은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사법 불신’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자유대한호국단은 이 전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한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C부장판사를 지난해 10월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신자유연대는 C부장판사 사진과 비방이 담긴 현수막을 강남역 등에 내걸기도 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1월 해당 보수단체를 옥외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선을 넘는 인신공격이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는 판단에 이례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정치의 사법화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은 일도양단적이라 사법부 판단은 기본적으로 한쪽은 찬성하고 한쪽은 반대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재판에 오기 전 타협하는 게 중요한데, 지금은 정치가 실종돼 모든 문제 해결을 법원에 떠맡기면서도 그 결론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A부장판사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치적 공격에 직접 가세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특정 정치인, 혹은 당 차원에서 판사를 공격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로 선을 많이 넘은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전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을 맡은 재판부와 법원 고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두 재판은 다음 달 결심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 전 대표 재판 중 첫 1심 결론이 나오는 만큼 사법리스크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한 부장판사는 “이 전 대표가 불구속 상태에서 유·무죄 자체를 다투고 있어서 과거 국정농단 대통령 사건보다도 훨씬 시끄러운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담당 판사들은 공격받게 될 것이고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판사들은 이런 현상이 결국 사법 시스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았다. 사법행정 경험이 있는 한 판사는 “원래 형사부가 일이 많고 결론을 내리기도 부담스러운 법인데, 여기에 정치적 공세까지 더해져 형사부 기피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사법부가 중립적 판단 기관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라고 했다.
법원 내부에선 법관 보호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6월 ‘법관에 대한 외적 부담 요인 분석과 법관의 보호 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사례를 유형화해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에서 정도가 지나칠 때 유감 표명 정도로 대응하고 있지만 직접적 위협이 된다면 형사처벌도 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법관에게 판결에 대한 책임이 있기에 일정 부분은 감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수도권의 한 고위 법관은 “판결에 대해선 누구든 비판할 수 있고 원칙적으론 각 법관이 감수해야 할 몫”이라며 “다만 비판 방식이 합리적이고 절제된 방법으로 이뤄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법원도 정치인 사건에 재량을 두지 말고 다른 일반 사건처럼 엄격한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며 “법관이 주도적으로 재판 진행을 못하니 판결 결과에도 불신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