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땅의 8월은 찜통 같은 더위만큼이나 뜨겁고 아픈 기억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주축이었던 일본 땅에 1945년 8월 6일은 히로시마, 8월 9일은 나가사키 상공에 핵폭탄이 떨어진 사건이다. 올해로 79년을 맞은 일본 땅은 8월이 되면서 연일 당시의 사진들과 피해자들의 애달팠던 삶을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36년간 일제 강점기를 살고 있던 우리나라는 8월 15일 해방을 맞는다.
그러나 해방됐지만 당시 강대국에 의해 나누어진다. 나라가 하나가 되면 돌아가리라 하고 남한에도 북한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5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한 퍼즐이 일본 땅에서 79년째 살고 있다. 나는 일본 땅에서 이런 조선인들과 14년째 살고 있다.
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이 땅은 800만 개의 신이 있다. 대부분의 일본 집들은 신을 모시며 아침저녁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본다. 길거리에서 쉽게 신사와 사찰을 볼 수 있다. 일본 문무과학성 조사에 의하면 일본 신화, 자연, 애니미즘, 조상숭배가 혼합된 민족 종교를 1억 2천만명 이상이 갖고 있다. 현재 일본 인구는 1억 2천만명이니 거의 100%나 다름없다.
일본 땅은 메마른 땅 같고 사막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땅은 순교의 피가 진하게 흐르는 거룩한 땅,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있다. 이 땅에 1549년에 복음이 심어졌지만 40여년 만인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이 선포된다. 교토와 오사카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 26명 체포되어 한겨울에 귀와 코가 잘린 채로 1000km 이상 끌려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달려 순교를 당한다.
교토를 지나 오사카를 지나 고베에 가면 등산가들과 관광객이 대성황을 이루는 산이 있다. 산세가 아름다운 그곳에 수많은 십자가 무덤들이 있다. 이 땅은 1860년대 후반까지 250년간 처절한 기독교 박해를 받았다. 놀라운 것은 기독교인이 남아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억압되고 갇힌 사회에서도 7대 이상 신앙을 지켜온 이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도 나가사키에 가면 1500년대부터 기독교인들이 250년간 숨어 지낸 집 11곳과 성당을 볼 수 있다. 일본인들도 모르는 기독교 흔적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하나님은 이 땅에 흐르는 당신의 사랑을 잊으셨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일본과 우리 민족이 함께 가고 있다. 이유가 있으신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재일 조선인들이 가진 ‘조선’이라는 국적을 북한 국적의 사람들로 오해한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과 정식 수교가 되어 있지 않아 북한 국적으로 일본에서 살 수 없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적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사실상 무국적자들인 것이다.
일본 땅에서 주는 특별 영주권으로 이 땅 한구석의 삶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여행 목적으로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조선인들도 많지만, 한국인의 권리는 없다.
자주 만나던 조선인 아이가 한국 사람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니고 일본 사람도 아니라며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고 울부짖는다. 우리는 이들에게 사상과 이념이 있다고 멀리했다. 복음도 그들을 피했다. 이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최고의 필요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정체성의 회복, 진짜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 무너진 곳을 막아서고 그 틈에 서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겔 22:30) 먼저 믿은 우리, 그리고 한국 교회가 이 땅에 숨겨져 보이지 않았던 재일 조선인들을 피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 갈라진 틈에 서서 함께 모여 사랑을 심기를 기도한다. 우리 한국이 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느 나라 백성이 이들을 사랑할 것인가.(요 4:9, 눅 19:5)
예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이들과 깊이 공감하고 너그럽게 사랑하고 계셨다. 예수님이 죽음을 무릅쓰고 내게 주고 싶어 하신 참된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내 삶을 통해 생명이 흘러가는 것. 이것이 내 삶의 기적이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