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자살사망자 수가 총 637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1% 증가했다는 결과가 발표되며 우리 사회의 심각한 자살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대표 조성돈 교수)가 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제12회 한국교회 생명보듬주일 발대식’을 열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 나가야 할 생명존중문화 확산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라이프호프는 매년 세계자살예방의 날(9월 10일) 주간에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자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생명존중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생명보듬주일을 진행해왔다. 생명보듬주일 신청교회에는 자료집을 PDF로 제공한다. 자료집에는 장년과 청소년 성도를 위한 설교문과 기도문, 교육 콘텐츠, 자살유가족 간증, 장례예식서 등이 담겨있다.
이날 선포식에서는 그동안 진행해왔던 활동에 더해 자살 유가족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 개정 서명운동, 목회자를 위한 마음돌봄 가이드 등 최근 실질적 필요가 대두된 이슈를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안해용(사진) 라이프호프 사무총장은 “자살 시도자의 경우 현행 체계 안에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자살 고위험군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살 유가족’은 그 정의와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아 지원의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며 “이를 위한 법률 개정을 준비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에 비해 8.3배나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기관은 전무한 상황이다. 라이프호프가 이들을 전문적으로 돕는 지원센터 설립을 위해 1만명 서명 운동을 펼치는 이유다.
안 사무총장은 “현재 온,오프라인 서명 캠페인을 통해 1800여명이 동참하고 있다”며 “생명보듬주일을 전후로 한국교회와 연합기관, 자살 유가족,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미고사(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여야 정치인 등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해 국회에 입법을 청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생명보듬주일은 다음 달 8일이며 당일 오후엔 안양 평촌중앙공원, 부평 신트리공원, 전주 한옥마을에서 동시에 ‘2024 사람 사랑 생명 사랑 걷기 캠페인’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를 전후로 전남 광주 경기도 부천, 군포, 충북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11월까지 걷기 캠페인이 이어진다.
조성돈(사진) 대표는 “자살이 교회 내 금기어처럼 여겨졌던 시기를 지나 최근엔 많은 교회와 기관들이 연대하고 협력해주고 있다”며 “올해 걷기 캠페인엔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 등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동참하기로 한 만큼 생명 존중 문화 확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선포식에 앞서 진행된 ‘목회자를 위한 마음건강돌봄 가이드북’ 출간 설명회에서는 집필에 참여한 전문가들의 연구 과정과 목회 현장에 필요한 제언이 발표됐다. 특히 김인숙(사진) 감리교신학대 기독교심리상담학과 외래교수는 자살 사건 발생 시 시기에 따른 교회 내 대응 방향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자살 유가족을 위한 목회적 돌봄 매뉴얼에 반영된 내용에는 즉각 대응(사건 직후 24시간 이내), 초기 대응(24시간 이후~장례식) 중기 대응(장례식 이후~3개월 이내) 장기 대응(3개월 이후~1년 이내)에 따라 교회가 ‘위로와 회복의 공동체’로서 마련해야 할 과정들이 담겨 있다.
김 교수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 교회가 ‘긴급 목회 돌봄 위원회’를 소집해 대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 자살로 인한 죽음과 애도에 대한 사전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초기 대응 과정에서는 사안 발생으로 영향을 받은 성도들을 파악해 정서적 돌봄을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며 “유족의 경우 고인의 죽음을 비밀로 여기거나 스스로 책임을 전가하는 등 비정상적 반응이 반복돼 적절한 애도를 방해하고 고립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선포식에서는 생명존중문화 확산을 위해 라이프호프와 협력하게 될 기관으로 마인드SOS(MIND SOS)가 소개되기도 했다. 마인드SOS는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류혜원 대표가 정신 건강 인식 개선을 위해 시작한 멘탈헬스 솔루션 스타트업 마인드풀커넥트(대표 류혜원)의 브랜드다. 김 전 총재를 비롯해 나종호(예일대), 백종우(경희대) 교수,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 등 정신 건강 전문가들이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류 대표는 “한국 국민 10~3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 치료에 대한 낙인 때문에 시의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계 정신 건강의 날(10월 10일)을 맞아 크리에이터들을 모아 마음 건강, 자살 예방 등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동시 게재해 SNS 상의 알고리즘을 변화시키는 ‘마음 구조 챌린지’를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인사말을 전한 이근복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은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우리가 이웃의 생명을 보듬는 일은 소중한 일”이라며 “교회가 출산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이미 태어난 생명을 보듬는 사역을 더 풍성하게 펼쳐간다면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는 일이자 한국교회 회복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