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 전기차화재, 야간근무자가 스프링클러 ‘정지 버튼’ 눌렀다

입력 2024-08-09 10:22 수정 2024-08-09 15:40
8일 오전 인천 서구 한 공업사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벤츠 등 관계자들이 지난 1일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서구 대단지 아파트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화재 당시 관리사무소 야간 근무자가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밸브를 인위적으로 잠근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소방본부는 지난 1일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서구 청라동 아파트 건물 방재실에서 화재 수신기를 확보해 디지털포렌식을 실시했다.

그 결과 불이 난 직후인 1일 오전 6시9분쯤 화재 수신기로 신호가 전달됐으나,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야간 근무자가 스프링클러 작동의 핵심 역할을 하는 ‘솔레노이드 밸브’를 정지시키는 버튼을 누른 기록이 확인됐다.

솔레노이드 밸브란 해당 아파트에 설비된 준비 작동식 스프링클러의 배관 속에 설치된 밸브다. 화재 신호가 정상적으로 수신됐더라도 정지 버튼을 누르면 솔레노이드 밸브가 열리지 않아 스프링클러에서 소화수가 나오지 않는다.

5분 뒤인 오전 6시14분쯤 정지 버튼은 해제됐지만 소방은 이미 발생한 화재의 열기 때문에 화재 중계기 선로가 파손돼 스프링클러가 동작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외부 전문가들 역시 지하 2층에 있는 수조에 소화수가 90% 이상 채워져 있고, 소화 펌프가 정상 작동했을 때 주변으로 튀는 물 자국이 발견되지 않은 점을 토대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소방 당국자는 “전기차 화재 직후 경보기는 울렸다”며 “경보음이 나자 관리사무소 야간 근무자가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밸브를 잠그는 버튼을 방재실에서 누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화재 발생 시 스프링클러는 불을 완전히 끄지는 못하더라도 불길이 확산하거나 주변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현장 감식에 참여한 국립소방연구원 관계자는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벤츠 전기차와 주변에 주차된 다른 차량 몇 대만 타고 진화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 당국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아파트 관계자 진술 등을 추가로 확보해 소방시설 설치 관리에 관한 법률 등 위반 사항에 대해 조치할 방침이다.

이번 화재는 지난 1일 오전 인천시 서구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있던 벤츠 전기차에서 발생했다. 화재로 주민 등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고, 차량 140여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다. 또 건물 지하 설비와 수도, 배관 등이 녹아 일부 가구에서 대규모 정전과 단수가 1주일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