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믹스트존에 들어선 선수들은 목에 건 메달을 내려다보며 하나같이 그간의 고된 훈련을 떠올렸다. 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4년간 ‘희생’이라는 말로는 모자라는 준비 기간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입는 것, 사소한 습관까지 모두 올림픽 시계에 맞춰왔다.
반면 어렵사리 온 올림픽을 빈손으로 마치고도 환히 웃는 올림피언들이 있다. 난민 대표팀 남자 기수로 개막식 선봉에 섰던 야하 알 고타니(19)가 대표적이다. 그는 8일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태권도 남자 68kg급 예선에서 첫판을 진 후 “이번 올림픽 이후로 특별한 경험을 한 또 다른 내가 될 것”이라며 “많은 문이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고타니로서는 올림픽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기적이나 다름없다. 시리아 출신인 그는 8살이었던 2011년 아즈락 난민 캠프로 이주해 14세에 태권도를 처음 배웠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데뷔전을 치른 그는 사상 처음으로 난민팀에 선발된 후 조국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 올림픽에 출전했다.
오세아니아 섬나라 키리바시의 유도 선수 네라 티브와 역시 첫판에서 짐을 쌌다. 심지어 경기 시작 5초 만에 승부가 갈렸다. 그의 고향 키리바시에서 프랑스 파리까지의 거리는 무려 1만4000㎞로, 비행기 환승에만 이틀 이상이 걸려 입촌했다.
비록 들인 시간에 비해 매우 짧은 경험이긴 했지만 티브와에게는 여러모로 의미 깊은 올림픽이었다. 그는 이번 대회 개회식에서 키리바시 선수단 기수를 맡아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올해 15세로 이번 대회 유도 선수 가운데 최연소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차드의 국가대표 이스라엘 마다예(36)는 첫판에서 고배를 마시고도 실질적인 소득을 얻었다. 그는 양궁 남자 개인전 64강에서 한국의 김우진과 경기 중 1점(과녁의 흰색 부분)을 쏴 화제를 모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양궁을 유튜브로 독학해 배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양궁 장비 제조업체 ‘파이빅스’와 후원계약을 맺었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차드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다. 김우진과 경기에서 생애 첫 올림픽 무대를 밟은 그는 아무런 스폰서도 적혀 있지 않은 민무늬 티셔츠에 가슴 보호대도 착용하지 않은 차림으로 나타났다. 4년 뒤 LA올림픽에선 다른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다음 올림픽까지 해마다 경기에 필요한 물품을 지급받기로 한 마다예는 “굉장히 기분이 좋다.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파리=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