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20·경희대)이 남자 태권도 58㎏급에서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다. 직전 도쿄올림픽에서 ‘노골드’에 그쳤던 한국은 일정 첫날부터 금빛 발차기를 날리며 태권도 종주국 위상을 되찾았다.
박태준은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남자 58㎏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의 가심 마고메도프(26위)에 기권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비토 델라킬라(4위)를 준결승에서 꺾으며 이변을 일으켰던 마고메도프는 박태준의 날렵한 발끝에 맥을 추지 못했다.
8년 만의 금메달로 직전 도쿄올림픽 ‘노골드’ 설움을 풀었다. 한국은 3년 전 도쿄에서 역대 최다인 6명이 출전하고도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에 그쳐 종주국 자존심을 구겼다. 이번 대회에선 오히려 선수단 규모가 줄어 메달 전망이 어두웠지만 벌써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은 이번에 4명의 선수만 출전권을 얻어 금메달 1개를 목표로 내건 바 있다.
박태준은 어렵사리 오른 생애 첫 올림픽에서 곧바로 금메달을 따냈다. 58㎏급은 한국 선수단에 강호가 몰려 있어 경쟁이 치열한 체급이다. 그간 동일 체급 간판 장준(24·한국체대)에 밀려 매번 선발전에서 고배를 마셨던 박태준은 지난 2월 상대 전적 장준과 올림픽 출전권을 두고 겨뤄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남자 최경량급에선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로, 남자 태권도를 통틀어서는 16년 만의 금메달이다. ‘대선배’ 이대훈도 넘어섰다. 이는 아시안게임 최초 3연패와 세계선수권 3회 우승에 빛나는 이대훈 역시 세계 1위로 군림하던 시절 해내지 못한 업적이다. 이대훈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따낸 은메달이 이 체급 종전 최고 성적이었다.
결승전 승부는 빠르게 갈렸다. 박태준은 경기 시작 7초 만에 2점을 따고 시작했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는 박태준의 발차기에 왼쪽 정강이를 맞은 마고메도프가 쓰러져 경기가 중단됐다. 한동안 고통스러워하던 마고메도프는 응급 처치를 받은 후 다시 일어났지만 경기가 재개된 후에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박태준은 강공을 이어가 9-0으로 1라운드를 따냈다.
2라운드에도 마고메도프는 절뚝이며 매트 위에 올랐다. 비디오 판독을 위해 잠시 경기가 중단된 상황에서도 발을 디디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회전 발차기로 상대 머리를 가격해 5점을 번 박태준은 순식간에 13-1으로 달려나갔다. 박태준의 발에 다시 등을 맞고 쓰러진 마고메도프는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기권을 선언했다. 박태준은 보호구를 벗은 뒤 태극기를 들고 천천히 매트를 돌더니 덤블링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박태준은 “어릴 때부터 간절히 원했던 메달인데 꿈만 같다”며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고 밝혔다. 시상식에서 마고메도프를 부축했던 장면에 대해선 “원래 알던 선수여서 끝나고 대화도 했는데 그 선수도 격투기고 당연히 부딪힐 수 있고 스포츠인데 괜찮다고 축하해줬다”고 전했다.
일정 첫날부터 금메달을 안겨 출발선을 잘 끊었다. 한국 태권도는 10일까지 여자 57㎏급 김유진, 남자 80㎏급 서건우, 여자 67㎏초과급 이다빈까지 차례로 메달 레이스를 이어간다.
파리=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