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폭염으로 아파트 정전 빈발하는데…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예산은 삭감

입력 2024-08-08 06:00 수정 2024-08-08 06:00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면서 전국에서 전력 수요 증가로 인한 아파트 정전 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핵심 예방책으로 꼽히는 노후 변압기 교체는 소극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가 교체를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이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 예산이 지난해 대비 약 20% 삭감되면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은 더 커졌다. 교체 적기를 놓친 노후 변압기가 대규모 아파트 정전 사태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8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아파트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에 26억6900만원의 정부 기금이 배정됐다. 지난해 33억3600만원에서 약 20% 삭감된 규모다. 노후 공동주택 세대별 전기 안전점검 사업과 전력 효율 향상 사업이 각각 지난해 대비 12%, 68% 증액된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폭염경보가 지속되자 서울, 인천, 수원 등 곳곳의 아파트 단지에서 변압기 과부하로 인한 정전이 발생했다. 무더위로 냉방을 위한 전력 사용량이 늘어났고 아파트 내 노후 변압기에 과부하가 걸려 정전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력 소비량이 적었던 시절 설치된 아파트 단지의 변압기의 경우 전력 한계 용량이 작다 보니 전력 수요가 순간적으로 늘면 쉽게 고장 날 수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지난해 정전 복구를 지원한 아파트 정전 사고 208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96건(46.1%)이 사용 연한 15년 이상 설비 고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전을 예방하는 주요 방법으로 노후 변압기 교체가 꼽히는 이유다.

그러나 노후 변압기 교체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파트 전기설비는 사유물이기 때문에 해당 아파트 단지에서 자체적으로 교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고효율 변압기로 교체하는 데 1대당 5000만~6000만원이 필요해 쉽지 않다. 여기에 공동주택에서 한번 정전이 일어나면 피해 규모가 크다는 점까지 감안해 정부에서 2019년부터 교체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설치 후 15년이 지난 변압기를 교체하려는 아파트의 신청을 받아 정부가 변압기 비용의 80%까지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정부 예산도 한정적이다 보니 전국 아파트의 노후 변압기 교체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46개 아파트 단지가 지원 사업을 신청했지만 예산 한계로 102개 단지에서만 노후 변압기 교체가 진행됐다. 올해도 지원 사업 신청 건수는 300건이 넘었지만 올해 예산이 크게 삭감되면서 70개 아파트 단지에서만 교체가 진행될 전망이다. 나머지 아파트는 노후 변압기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정전 위험을 상시로 떠안고 있어야 하는 셈이다.

정전이 길어질 때마다 출동해야 하는 한국전력은 노후 변압기 교체 대신 다른 정전 예방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 관계자는 “지난 7월 열화상 진단을 통해 전기 설비 이상 점검을 완료했다”면서 “정전 위험이 커질 경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과부하 위험을 경고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식으로 정전을 예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노후 변압기를 교체하면 전력 효율을 높이고 동시에 화재 예방 효과도 나타난다”며 “지원 사업을 확대하는 방향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준식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