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원주민 사라 펠레티어(15)양은 최근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6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교회(이기용 목사)에서 만난 사라는 한국에 부모님과 두 명의 언니가 새로 생겼다며 밝게 웃었다. 사라는 “옷과 신발 등을 사주며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감사했다”며 “홈스테이를 하며 한국 집에서 처음 자봤지만, 마치 진짜 내 집같이 포근했다”고 말했다.
서스캐처원주에서 온 사라를 비롯해 옐로나이프 등 캐나다 각 지역 원주민 보호구역에 사는 만15~16세의 청소년 7명이 선교여행 차 지난달 27일 한국을 찾았다. 여행은 캐나다 원주민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을 펼치는 AYC(Aboriginal Youth Community·대표 데보라 정 목사)가 마련했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7일까지 신길교회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머물며 한국 문화 체험과 유적지 방문, 청소년 수련회 등의 시간을 가졌다.
캐나다는 천혜의 자연을 지닌 손에 꼽히는 선진국이지만 먼저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원주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원주민들은 지배 계층이 된 백인들로부터 오랜 기간 탄압받았다. 과거 캐나다 정부는 원주민에게 정착지원금을 주고 살던 곳을 떠나 부족별로 모여 살게 했다. 사실상 고립정책이다. 술과 마약 등에도 눈 뜨게 했다. 빈곤과 중독이 대대로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특히 자신들을 탄압한 백인들의 종교로 인식된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더했다.
10여 년째 선교여행을 이끌어 온 데보라 정(63) 목사는 “현지 원주민의 자살률이 백인의 20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며 “특히 원주민 다음세대는 술과 마약에 찌든 부모 밑에서 방치된 채 자살을 하나의 해방구로 여기곤 한다”고 전했다. 옆에 있던 AYC의 김요한(32) 전도사는 “이민자보다 못한 삶을 산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정 목사는 2013년 AYC를 세우고 특히나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원주민 다음세대를 품기 시작했다. 원주민이 가진 외지인과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자 부단히 헌신했다. 백인보다 동양인에 대한 거부감이 덜했던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정 목사는 말했다. 정 목사는 “이런 여행을 추진해온 것도 원주민의 근본인 다음세대가 바뀌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며 “아이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알려주며 꿈을 품게 해주고, 한국교회의 사랑과 헌신을 전해주며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 이어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변하니 그들의 동생 나아가 부모와 마을 분위기까지도 바뀌더라”며 “단순 일회성 선교 프로그램이 아닌 지속성 있는 다음세대 전문 사역이 필요한 이유이다”고 덧붙였다.
그런 만큼 이번에 한국을 찾은 아이들은 과거 한국사에서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발견했고, 지금의 한국을 보며 자신들이 이룰 미래에 대한 꿈을 꿨다. 특히 아이들은 전날 찾은 임진각에서 6·25전쟁 당시 자신과 같은 또래였던 학도병이 부모에게 남긴 편지를 접하고는 깊은 감동에 오랫동안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또 신길교회를 중심으로 한국교회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에 깊은 감동과 감사함을 느꼈다고 했다.
김 전도사에 따르면 사라 역시 원주민인 아버지와 독일인으로 선교 사역을 했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지만, 중독과 성적 타락이 심각한 주변 환경 탓에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상처가 컸다. 사라는 “전쟁 등으로 민족에 희망이 없던 상황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의 번영을 이룬 한국 역사가 인상 깊었다”며 “나 역시 하나님 사랑으로 상처를 이겨내고 삶이 180도 변할 수 있었는데 고국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 느끼는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만난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이끌고 방한한 제이시 브래스(32)씨도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좁은 감옥에 갇혀 고문당한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우리 할머니 세대가 겪으셨던 고난이 겹쳐 떠올랐다”고 거들었다. 브래스씨는 서스캐처원주의 한 원주민 부족의 청년리더로도 뽑히는 등 현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차세대 지도자다. 고국에서 원주민의 미래와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을 하고 싶다는 그는 “오직 믿음에 의지해 희생과 헌신의 정신으로 지금의 한국을 일으킨 한국 각 분야의 리더십을 더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360개가 넘는 캐나다 원주민 부족이 분열과 중독의 역사를 끊고 하나가 되도록, 많은 크리스천 다음세대가 지도자로 세워질 수 있도록 한국교회도 함께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정 목사는 한국교회에 캐나다 원주민을 위한 지원과 관심을 요청했다. 단 재정지원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도 복음에 빚진 자들이 아닌가요. 과거 한국처럼 캐나다에도 복음의 일꾼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꼭 전문 선교사가 아니더라도 됩니다.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지닌 청년들이 원주민들을 위해 같이 놀아주고 함께 예배하며 기도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