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심리가 미국 뉴욕 주식시장을 강타하며 3대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미국 경제 둔화 우려 충격으로 흔들린 글로벌 주식 시장 여파가 다시 미국 시장에 영향을 미친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했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33.99포인트(2.6%)내린 3만8703.27에 장을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60.23포인트(3.0%) 내린 5186.33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76.08포인트(3.43%) 내린 1만6200.08에 장을 마쳤다. 다우지수와 S&P 500 지수는 2022년 9월 13일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세 지수는 오전 한때 각각 3.11%, 4.25%, 4.52%까지 급락했다가 오후 낙폭 일부를 만회했다.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 공포지수로 알려진 변동성 지수 VIX는 이날 전 거래일(23.39포인트)보다 181%(65.73포인트) 폭등하며 장을 시작했다가 66.48%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날 하락은 엔비디아(-6.35%), 애플(-4.82%), 알파벳(-4.61%), 아마존(-4.10%), 마이크로소프트(-3.27%), 메타(-2.54%) 등 대형 기술주가 주도했다. 엔비디아는 장 초반 15.5%까지 폭락하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테슬라(-4.23%)까지 포함한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 시총은 한때 1조 달러 증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 거품 우려와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것) 청산 영향이 겹친 것으로 분석했다.
로이터는 “엔 캐리 트레이드로 자금이 조달된 미국 기술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며 “시장 폭락은 미국 경제 (둔화 우려)보다는 저렴한 자금 조달의 종식과 더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조 브루스엘라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이건 경기침체 열차가 아니라 옛날식 시장 패닉에 불과하다”며 “투자자들이 이지 머니(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의 종말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시장 불안이 미 고용시장 둔화나 연준의 금리인하 타이밍 실기 우려가 아니라 저금리 시대의 폐막에 대응하며 자금을 옮기는 데서 비롯됐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퍼진 과도한 공포를 우려하면서도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침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금의 혼란이 실제 경제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패닉에 빠지기엔 너무 이른다고 한다”며 “경제는 여전히 견고하고 서비스 부분은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둘기파 연준 인사로 꼽히는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CNBC방송 인터뷰에서 “고용지표가 기대보다 약하게 나왔지만, 아직 경기침체 상황 같지는 않아 보인다”며 “현재 여러분은 의사결정을 할 때 (실제 상황이 아닌) 전망에 의존하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일 발표된 7월 고용지표에 시장이 지나치게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굴스비 총재는 미국 소비자 연체율이 높아지는 등 일부 지표에서 경고등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미국 경제는 상당히 안정적인 수준에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고용과 물가, 금융 부분에 문제가 나타나면 즉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시장은 미국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7월 미국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51.4로 지난달보다 2.6포인트, 시장 전망치보다 0.4포인트 높게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PMI가 50을 넘어서면 경제 활동이 확장세를 뜻한다.
시장은 연준의 긴축 완화 속도가 더 가팔라 질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9월과 11월, 12월에 열리는 세 차례 회의에서 연속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 선물시장에서 9월 ‘빅컷’(0.5% 포인트) 인하 가능성은 86%로 나타났고, 연말 미 기준금리가 4%대 초중반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80%를 웃돌았다.
주식시장 급락은 정치권으로도 불똥이 튀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주식 시장은 폭락하고, 일자리 수는 끔찍하며, 우리는 3차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는데, 역사상 가장 무능한 지도자 두 명까지 있다”며 “이건 좋지 않다”고 적었다. 트럼프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 상원의원도 “이 순간은 전 세계적으로 진정한 경제적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며 “지금은 트럼프가 4년 동안 보여준 것과 같은 안정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