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배드민턴도 양궁 같았으면…‘은퇴’ 곡해 말길”

입력 2024-08-06 05:02 수정 2024-08-06 10:23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안세영이 시상식에서 금메달에 입을 맞추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뒤 대한배드민턴협회 운영에 대해 작심 발언을 한 안세영(22·삼성생명)이 보다 구체적인 입장을 전했다.

한국 배드민턴 선수로는 28년 만에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은 5일(현지시간) 경기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6시간 뒤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배드민턴도 양궁처럼 어느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도 메달을 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안세영은 “제 부상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실망했었다.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가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대표팀 은퇴를 시사한 바 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무릎을 다치게 됐던 과정과 그 이후 대표팀의 대처 과정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상 관리’는 하나의 사례였을 뿐 대표팀 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는 게 안세영의 말이다. 안세영은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면서 “선수에게 ‘이번이 기회다’라고 말할 것만이 아니라 꾸준한 기회를 주면서 관리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심 발언’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던 2018년이었다. 안세영은 “제가 목표를 잡고 꿈을 이루기까지 원동력은 제 분노였다”면서 “제 목소리를 높이고 싶었다. 제 꿈은 어떻게 보면 ‘목소리’였다”고 털어놨다.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허빙자오와 경기를 안세영이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안세영은 선수 육성과 훈련 방식이 단식, 복식별로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식과 복식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다른 체제에서 운동해야 한다고 그는 짚었다.

안세영은 “일단 감독님과 코치님이 나뉘어야 하고 훈련 방식도 각각 체계적으로 구분돼야 한다”며 “단식 선수들은 개개인 스타일이 다른데 그걸 한 방향으로만 가려고 하니까 어려움이 많지 않나 싶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복식 종목을 중심으로 대표팀이 운영돼 왔다고도 폭로했다. 안세영은 “항상 성적은 복식이 냈으니까 치료와 훈련에서 복식 선수들이 우선순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안세영은 차라리 개인 트레이너를 쓰고 싶다는 의견을 꾸준히 피력해 왔다고 한다. 안세영은 “타이쯔잉(대만)은 트레이너 2명, 코치 1명을 데리고 다니고 천위페이(중국)도 이번에 트레이너 2명을 데리고 왔더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안세영이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파리=윤웅 기자

대표팀 훈련 방식의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안세영은 “근력 운동 프로그램이 1년 365일 똑같고, 배드민턴 훈련 방식도 몇 년 전과 똑같다”면서 오히려 부상 위험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부상이 안 오게 훈련하든지, 부상이 오면 제대로 조치해주든지 해야 하는데 부상은 오고, 훈련은 훈련대로 힘들고, 정작 경기에는 못 나가는 식”이라고 답답해했다.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일방적인 의사결정도 비판했다. 안세영은 “제가 프랑스오픈과 덴마크오픈을 못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제 의지와는 상관없었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면서 “협회는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은 채 (명단에서) 뺀다”고 주장했다.

사후에라도 설명을 요구할 순 없었느냐는 질문엔 “물어보지도 못하는 시스템과 분위기다. 대회가 끝나면 끝인 상황에서 제가 물어볼 기회가 없다. 미팅조차 없다”고 답했다. 그는 끝으로 “협회와 체육계 관계자 모두 이 문제들에 있어 회피하고 미루기보단 책임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안세영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 기사에 또 한번 상처”

이후 안세영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관련 입장을 밝혔다. 그는 “오늘 하루 낭만 있게 마무리하고 싶은 상상과는 다르게 저의 인터뷰에 다들 놀라셨죠”라며 “일단은 숙제를 끝낸 기분에 좀 즐기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도 없이 저의 인터뷰가 또 다른 기사로 확대되고 있다. 저의 서사는 고비마다 쉬운 게 없다”고 토로했다.

안세영은 “선수 관리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떠넘기는 협회나 감독님의 기사들에 또 한번 상처를 받게 된다”며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 선수들이 보호되고 관리돼야 하는 부분, 그리고 권력보다는 소통에 대해서 언젠가는 이야기드리고 싶었는데 또 자극적인 기사들로 재생되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누군가 전쟁하듯 이야기드리는 부분이 아니라 선수들의 보호에 대한 이야기임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며 “그리고 은퇴라는 표현으로 곡해하지 말아 달라. 제가 하고픈 이야기에 대해 한번은 고민해주고 해결해주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본다”고 덧붙였다.

안세영이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 허빙자오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주저 앉아 울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앞서 김학균 대표팀 감독은 안세영의 작심 발언 이후 취재진을 만나 “작년부터 예측했던 일이다. 안세영이 올림픽을 나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무엇이든 올림픽 끝나고 하라고 설득해 여기까지 온 것”이라며 “대한배드민턴협회와 법정싸움을 하겠다는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법무법인 지혁의 손수호 변호사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안세영’이라는 이름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캡처해 올리며 “세계 최강자에게도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다. 고치고 바꿀 수 있도록 힘을 보내주시기 바란다”는 글을 올려 이목을 끌었다. 손 변호사는 대한체육회 규정심사관이자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자문을 맡고 있다.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