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열렸는데 텅텅 빈 파리 시내 ‘미스터리’

입력 2024-08-05 14:38

올림픽 경기를 보려고 대규모 관중이 몰려든 프랑스 파리의 관광 산업이 특수를 누리기는커녕 전례 없는 부진을 겪고 있다. 항공, 숙박, 식당 할 것 없이 모두 큰 타격을 받았다.

미국 CBS방송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 중 하나인 파리에는 30만명 이상이 여행과 관광 산업에 종사한다”며 “이들 대부분은 올여름 특수를 누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이 빗나갔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유로뉴스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행 붐에 대한 기대와 달리 방문객은 물론 파리 주민조차도 이번 여름에는 파리를 기피하고 있다”며 “올림픽 개최 도시에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린다는 통념의 예외가 파리에서 증명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해설했다.

유로뉴스는 “올림픽 기간 파리 방문을 피하라는 경고가 있었는지, 숙박시설 가격 급등과 올림픽 행사로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관광객이 줄었는지 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올림픽 열리는데 외국인 방문 15% 감소
에어프랑스-KLM은 올림픽 행사에 따른 파리 방문 수요 감소로 올해 6~8월 매출이 1억6000만~1억8000만 유로(2373억9200만~2670억6600만원)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항공사는 “국제 시장에서 파리를 굉장히 피하는 경향이 보인다”며 “프랑스인도 올림픽 후로 휴가를 미루거나 대체 여행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델타항공도 올여름 올림픽 기간 파리로 가는 여행객이 크게 줄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파리 관광청은 올해 7월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동기보다 14.8%, 2019년보다는 16.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올림픽 기간 유럽과 북미 출신 방문객은 각각 24%, 15% 늘어나는 반면 오세아니아와 중동에서 오는 방문객이 각각 30%, 41%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파리 호텔과 에어비앤비도 관광객 감소로 때아닌 불경기를 겪고 있다. 파리 관광청은 올해 7월 호텔 객실 점유율이 60%로 전년 대비 10% 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집주인)들은 요금을 낮추고 있다. 유로뉴스는 “일부는 50% 이상 낮췄다”며 “노트르담 근처 침실 2개짜리 로프트(아파트형 숙소)는 올림픽 개최 기간 1박 요금을 1407달러에서 683달러로 내렸다”고 전했다.

루브르·에펠탑엔 관심 없는 올림픽 관객들
대규모 인파를 끌어모으는 올림픽 개최에도 파리 관광이 죽을 쑤는 건 방문객 대부분의 관심사가 여행이나 관광이 아니라 ‘경기 관람’이기 때문이다. 현재 올림픽 경기를 보려고 파리를 찾은 이들 상당수는 시내 관광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CBS 기자는 파리 현지에서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이 도시에 방문객과 관광객은 많지만 그들은 과거 대부분의 여름에 왔던 맛집 순례객과는 거리가 멀다”고 설명했다.

파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치즈 투어’를 운영하는 여성은 올림픽을 맞아 새로운 상품을 내놨음에도 올여름 일감이 40~50% 감소했다고 CBS에 말했다.

파리에서는 필수 코스로 여겨지는 박물관부터 식당, 카페까지 모두 방문객이 급감했다고 한다. 한 올림픽 관람객은 “경기장은 줄이 매우 길었는데 식당이나 행사장 밖은 텅텅 비어 있었다”고 전했다.

파리서 경기 보고 휴양은 다른 도시에서
순수하게 여행이나 관광을 위해 파리를 찾는 휴가객은 정작 파리에 가지 않는 분위기다. 올림픽 관중으로 도시가 너무 혼잡한 데다 물가는 비싸기 때문이라고 CBS는 분석했다. 방송은 “여행객들을 그걸 감당할 다음이 없다”며 “올림픽 행사 때문에 오는 사람들은 보통의 관광객처럼 돈을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일부 올림픽 팬은 경기 관람 후 파리를 뒤로하고 휴양지인 해변으로 향하고 있다. 파리에서 여자 세븐스(7인제) 럭비를 관람했다는 한 여성은 CBS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러고 나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마르세유로 넘어왔다”며 “그리고 어제 요트 경기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상과 달리 한산한 파리 시내 풍경에 현지인도 놀라는 분위기다. 최근 파리 지역 언론은 버려지다시피 한 디즈니랜드와 퇴근시간대 지하철 좌석을 확보한 시민들의 당황한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BBC는 “(파리) 호텔과 레스토랑들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가격을 낮췄다”며 “올림픽을 앞두고 높은 물가와 인파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예상치 못하게 파리에서 휴가를 보내기에 좋은 시기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